옛 자료 모음방/애송 동시

제 22 편 반 달

松竹/김철이 2011. 7. 7. 07:47

제 22 편 반 달

 

윤 극 영
슬픔 딛고 노 저어라, 저 불빛을 향해
신수정·문학평론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서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 일러스트=윤종태
거의 국민가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시는 1연과 2연 사이에 묘한 분열이 있다. 처음 연을 지배하는 정서는 '서쪽 나라'라는 메타포에서 보듯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동쪽이 삶과 관련되어 있다면 서쪽은 언제나 삶 이후의 세계를 가리킨다. 지금 화자는 새벽하늘에 걸린 반달을 보며 그 '하얀 쪽배'가 서쪽 나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배는 홀로 외롭게 서쪽 나라로 흘러간다. 언제나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처럼.

이 막막한 정서는 두 번째 연에서 변질된다. 서쪽 나라로 흘러가던 '하얀 쪽배'는 드디어 은하수를 건너고 구름나라를 지나서 반짝이는 샛별을 보고야 만다. 기약할 길 없던 달의 움직임이 마지막 두 행, 즉 멀리서 반짝이는 샛별을 등대 삼아 길을 찾으라는 주문과 함께 반전된 것이다. 죽음의 나라를 표류하던 하얀 쪽배는 드디어 삶의 지표를 찾고야 말겠다는 의욕으로 뒤바뀐다. 이제 죽음을 향한 형이상학적인 행로는 삶의 샛별을 찾기 위한 계몽적 모험으로 정리되고야 만다.

이 분열은 어디에서 왔을까. 윤극영은 1903년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나 1988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주옥같은 노래들을 많이 만든 작곡가였다. 소파 방정환 등과 더불어 색동회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에게 어린이와 노래는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운 우리 노래를 통해 이제 막 삶의 주역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어린이들에게 꿈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기를 희망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동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등과 같은 노래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노래의 효용성은 그것이 말하려고 하는 바가 아니라 그것의 있음 자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반달〉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 시는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젊은 나이에 죽고 만 그의 큰누이를 추모하기 위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개인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1연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외로운 심사를 위무해 주는 국민적 심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에겐 노래를 통한 이념의 전파라는 목표가 있었다. 샛별을 찾아야 한다는 의욕은 이 시의 2연을 '등대 찾기'로 바꾸고야 말았다. 때로는 개인사의 곡진한 고백이 바로 보편적 정서에 맞닿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반달〉의 분열은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던 시대의 상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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