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자료 모음방/애송 동시

제 21 편 문구멍

松竹/김철이 2011. 6. 24. 20:15

제 21 편 문구멍

 

신 현 득
아기의 호기심에 문은 어느새 빠꼼 빠꼼
장석주·시인

 

빠꼼 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1959)

▲ 일러스트=양혜원
〈문구멍〉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선한 동시다. 빠꼼 빠꼼 문구멍이 나 있다. 누가 문구멍을 뚫었나 했더니 저 호기심이 왕성한 아가가 그 주인공이다. 문명을 밀어올린 힘의 바탕인 저 호기심을 누가 말릴 수 있을 것인가. 저 어린 호기심이 자라서 우주시대를 연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만들고, 처음으로 화성 옆을 스치며 화성영상을 보내온 미국의 행성 탐사선 매리너호를 만들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아가는 키가 자란다. 운동 역학에 무지한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 활강법을 배운 적 없는 새가 창공을 나는 것, 산파술(産婆術)을 배운 바 없는 개가 새끼를 낳고 탯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날이 키가 자라는 아가는 지구 위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 중의 하나다. 엄마와 아빠는 이 기적을 목격하며 기뻐한다. 날마다 세계는 움직이고 아가는 키가 큰다. 이는 세계의 역동에 조응하는 아가의 역동이다.

문구멍은 수직으로 눈금을 올리고 있다. 아가의 키가 자랐다는 얘기다. 문구멍은 문밖 세상을 향한 궁금증이 낳은 궁여지책(窮餘之策)일 터다. 아직 말문도 트지 못한 고놈 기특하다. 어떻게 문구멍을 뚫어 밖을 볼 생각을 했을까. 문구멍을 뚫었다고 아가를 야단치는 어른은 생각이 덜 자란 사람이다. 문구멍은 아가의 모험과 지혜의 산물이요, 아가가 이 세상과 소통한, 혹은 소통하려고 했던 흔적이다. 문구멍을 뚫고 먼저 나아간 것은 눈이고 마음이다. 몸은 그 뒤일 것이다.

신현득(1933~2008)은 경상북도 의성 출신의 아동문학가다. 어효선 선생의 뒤를 이어 새싹회의 회장에 선임돼 이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쉰 해 가까이 빼어난 동시들을 써냈는데, 어린 것, 약한 것을 향한 시인의 연민과 사랑이 한결같다. "시골 담밑에 / 호박 포기// '잘 크네'/ '잘 크네'/ 칭찬하면 잘 큰다// '쪼깬 놈이 벌써 덤블 벋는대이'/ 시골말로 칭찬하면/ 더 잘 큰다"(〈칭찬〉)에도 그 사랑은 잘 나타난다. 크게 볼품없는 호박 포기도 잘 크네, 잘 크네, 칭찬을 들어야 잘 자란다. 무릇 어린 것들에겐 사랑과 관심과 칭찬이 뼈를 키우고 살을 찌우는 보약이고 자양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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