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 삼위일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법/삼위일체 대축일(이정재 신부)
군종신부가 되어 매 주일마다 만나는 병사들을 대하면서 때로는 무섭게, 때로는 친구처럼, 또 때로는 말없이 손을 잡고 등을 두드리며 힘을 주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항상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더 좋은 모습으로 신앙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병사들에게 꼭 필요한 모습으로 다가가야 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병사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모습으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시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 분이심을 믿고 고백하게 됩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랑을 통해서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가 기쁠 때 나와 함께 그 기쁨을 함께 하시고,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나와 함께 그 짐을 들고 가시며, 내가 방황하고 주님의 곁을 떠나려 할 때 따끔하게 나를 혼내 주시어 정신을 바짝 차려 당신 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해 주시는 분! 그분은 나의 삶에서 바로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 하십니다. 그러기에 한 분이신 하느님이 내 삶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와 함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때론 무섭게, 때론 친구처럼, 때론 마음에 불을 놓아 주시어 나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법입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면서 그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몇 해 전 사제 연례 피정으로 파트너쉽 영성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나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피정의 목적이었습니다. 그 피정 프로그램에서 셋째 날 참 인상적인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1인칭, 2인칭, 3인칭으로 기술하는 것입니다. 우선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관계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내가 겪은 일을 제3자의 입장에서 기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2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며 서로 대화를 하게 됩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도 내가 되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는 1인칭 시점으로 상대방이 되어 그 사건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래전 제대로 된 화해를 나누지 못한 사람을 선택해서 이 과정을 풀어 나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용서는 사랑을 만들어 주었고,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특별한 사랑법을 알려주십니다. 그 사랑법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사신 것처럼 직접 그 사람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치유하고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오늘 복음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러한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분명히 알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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