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야곱의 우물(성령 강림 대축일)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깊은 숨을 불어넣으시어 낡고 지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의 모든 발현사화와 마찬가지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도권을 취하시고 (“평화가 너희와 함께 !”) , 이어서 제자들이 부활신앙 안에서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줌) , 사명이 주어집니다 (성령강림과 죄의 용서를 위한 성령). 요한복음서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을 잠그고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장소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이어지는 구절로 봐서 아마도 토마스를 제외한 열한 명의 제자가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문이 잠겨 있다.’ 라는 말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잠겨 있는 문을 통과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을 지니신 분임을 보여줍니다. 요한은 유다인에 대한 제자들의 두려움보다는 예수님이 이렇게 기적적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다는 데에 더욱 관심이 있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분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함께 계시는 분” 입니다. (마태 18, 20)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못에 박힌 발이 아니라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십니다. 이것은 군사들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요한의 말을 연상시킵니다. (요한 19, 31 – 37) 부활하신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손이 못 박히고, 군인들의 창에 옆구리가 찔려 피를 흘리며 죽어가신 바로 그분입니다. 이 지상에서 살고 사랑하고 고통당하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던 나자렛 예수와 부활하신 영광의 그리스도는 같은 분입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것을 깨닫고 기쁨에 찹니다.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넘치는 기쁨을 자아냅니다. 예수님이 기쁨에 넘치는 제자들에게 하신 인사, “평화가 너희와 함께 !” 라는 말은 앞으로 제자들에게 일어날 일, 성령의 선물과 죄를 용서하는 권한의 위임을 생각할 때 제자들에게 적절한 인사말입니다. 평화는 성령의 선물 (갈라 5, 22) 이자 하느님과의 화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귀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요한 20, 21)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성령을 주십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부활사건은 제자 파견과 연결되지만 (마태 28, 16 – 20; 마르 16, 15 – 20; 루카 24, 44 – 49; 사도 1, 7 – 8 참조)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 (20, 22) 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아마도 제자 파견이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4, 35 – 38; 13, 19 – 20 참조)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창세기에 표현된 하느님의 창조행위로 돌아가게 합니다. 하느님은 숨을 불어넣으시어 생명이 없는 것을 생명이 넘치는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제자들을 새로운 창조물로 태어나게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시며 죄의 용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죄의 용서 안에는 성령이 현존한다는 신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의 용서는 자신의 힘으로는 죄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인간이 하느님의 숨결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령을 받아라.’ 는 말은 사도 2, 1 – 4에 언급된 성령의 선물이나 성령강림과 같은 의미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시제로 묘사된 그 사건은 요한복음서의 다른 구절들을 살펴볼 때, 사도행전에 나오는 루카의 성령강림과 동등한 요한의 성령강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한에게 성령강림과 부활은 서로 일치합니다. 보호자인 성령과 부활한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최후 만찬 때 성령에 대해 말씀하신 다섯 가지 약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한 14, 16 – 17. 25 – 26; 15, 26 – 27; 16, 7 – 11. 12 – 15) 오늘 말씀에서 성령과 죄의 용서에 대한 권한이 같이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이미 성취된 죄의 용서에 대한 선포 그 이상의 의미를 요한이 강조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 의해 죄의 용서가 행해지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죄의 용서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오는지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성령강림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가 교회의 성사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날입니다. 묵상 (Meditatio) 주님, 저의 메마른 마음 안에 온유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살처럼 부드럽고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의 대지처럼 만드소서. 식별의 선물이라는 비에 흠뻑 젖게 하시어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게 하소서. 인내와 성실의 영을 주시어 제가 하는 일이 당신의 구속 사업의 좋은 도구가 된다는 것을 믿게 하소서. 기도 (Oratio)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오소서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오소서 은총의 선물을 주시는 분, 오소서 마음의 빛이시여. (성령 송가)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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