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실천이 있는 곳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장준혁 신부(주님 승천 대축일)
언젠가 선배 신부님께서 이런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만큼 많은 사고들이 있으니 이런 글귀가 붙은거겠지요. 그러나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런 글귀가 교회에 붙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초대교회부터 예수님의 사도들은 증인으로서의 삶을 구체적인 그들의 삶을 통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영향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도 맨날 100점 맞아서 부모님 하느님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데…”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과연 몇점짜리로 사도들의 모습을 이어오고 있는지 반성해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가장 힘있는 증거는 생활로써의 증거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파견 받은 구체적인 삶의 자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련 최초의 우주 비행사 가가린이 지구 궤도 저 위에 올라갔을 때 말하기를 ‘하늘에 올라와 보니 하느님이 안 보인다.’하면서 지상 관제소에 유명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말은 백 번 맞습니다. 무신론자들인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에겐 아주 통쾌하고도 시원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한 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의 어느 공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 해서 주님이 하늘의 어느 공간에 좌정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승천을 통해서 진실로 우리 가까이에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 ‘승천’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육신의 시야에서는 사라지셨지만 그러나 영적으로는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오신 것이 승천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교회 위에 지도자로 군림하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가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 대신에 명령하고 강요할 사람을 교회 안에 세워 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았다고 아무도 주장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발족하기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미 떠나가셨습니다. 그것이 승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복음을 위한 그들의 섬김 안에 함께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도자로 군림하시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삶이 보여준 하느님의 일을 부활의 영광으로 흐리게 만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강요하신 분이 아니었고, 하느님의 영광을 배경으로 군림하면서 가르치신 분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유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부활하신 분의 영광을 기웃거리지 말라는 승천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다는 말은 하늘 아래 이 세상 어디서나 실천이 있는 곳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이심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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