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두레박

[서울] 지나쳐 가는 봄이 아닌 누리는 신앙의 봄

松竹/김철이 2011. 5. 7. 21:11

[서울] 지나쳐 가는 봄이 아닌 누리는 신앙의 봄/권철호 신부(부활 제3주일)

 

 

“바람과 햇살과 꽃들 같이 주어진 일상을 특별하게 다룬다면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오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유달리 늦게 시작된 사순절에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듯 그렇게 더디 온 봄이지만 쉽게 떠날 것 같은 불안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기다려 온 시간에 비하면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 ‘봄날은 간다.’는 말이 봄날은 짧다는 말을 당연하게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봄날이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되는 부활입니다.

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향하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한껏 봄날에 대한 기대로 충만했던 그들이었지만 봄날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누린 시간이 턱없이 짧아서 함께 한 추억만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오늘 예수님이 다가오십니다. 하지만 높았던 기대만큼 커다란 좌절을 겪은 그들의 눈에는 이미 예수님의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봄날은 너무나 짧아 되돌이킬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날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는 마음은 늘 간절하지만 부활을 누리는 시간은 늘 짧게만 느껴집니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한 느낌 속에 빈 무덤은 부활의 상징이 되기는 했어도 삶의 나침반이 되지 못한 채, 망각의 강물에 흘려보내지는 느낌입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너무나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익숙해져 누릴 수 있는 부활을 누리지 못한 채, 봄날은 간다는 말처럼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것이 지난 삶이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일상을 특별하게 다룬다면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오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처럼 신앙의 봄인 부활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활은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지속되는 시간입니다. 일상의 전례인 미사 전례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은 짧은 봄날과 같은 분이 아니라 늘 봄날과 같은 분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그 봄날을 우리와 영원히 누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지 짧은 봄날의 기억을 선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실 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제자들처럼” 부활은 잠시 지나쳐 가는 시간이 아니라 매일 누리는 전례를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신앙의 봄날이 됩니다. 다만 부활을 지나가는 시간이 아니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시
간으로 간직하는 것은 매일 드리는 일상의 전례를 특별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속에 자리하겠지만 말입니다. 해서 이번 부활은 매일의 성찬례를 통해 가는 봄이 아닌 오는 신앙의 봄으로 그렇게 맞이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