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두레박

[군종] 하느님의 자비, 타인을 향한 사랑

松竹/김철이 2011. 4. 30. 08:54

[군종] 하느님의 자비, 타인을 향한 사랑/강은식 신부(강은식 신부)

 

 

늘은 부활 제2주일이며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자비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또는 그렇게 여겨서 베푸는 혜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부활의 두 번째 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선포한 것은 부활의 신비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그러한 사랑에 감사드리도록 초대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우리 스스로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고 있을까요? 우리가 주위에 환경과 삶을 민감하게 바라보고 돌아보지 않는다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쉽게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당연시하며 받아들이고 누리며 살아오는 모든 익숙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며 그 안에서 ‘당연함’이란 단어를 지웠을 때, 우리는 삶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가장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제자들은 그 분을 버려두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 앞에 제자들은 그저 망연자실해하며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자신의 상처들을 온전히 지닌 채, 위로받으셔야 할 분이 오히려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듯 항상 먼저 우리 곁에 와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버리지 못하고 있는 많은 욕심들에서 비롯된 수많은 죄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분께서는 그 상처를 온전히 지닌 채 우리 곁에서 위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우리의 신앙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자신의 상처받은 몸으로 깊이 안아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우리 신앙의 기초이고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는 죄에 쉽게 노출되어 있고 유혹 앞에 연약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러한 삶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고 살아갑니다.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입혀진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나의 마음의 문이 굳건히 닫히고 나의 시야가 자신에게로만 한정되어져 나만을 돌보기에 급급해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황폐해지고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는 사막이 될 것입니다. 나의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나의 위로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타인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우리들이 지닌 상처 위에서 피어날 때 그 사랑은 더욱 진실 되고 아름다운 꽃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늘 우리와 함께 머무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스스로가 그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느낄 수 있는 선물입니다. 또한 이러한 우리들의 사랑의 실천이 바로 하느님을 우리의 삶의 자리에 머무르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모범을 보이신 사랑을 우리가 실천하려고 할 때, 우리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수많은 죄로 인해 돌아가신 분이 다시 부활하여 우리 가운데 함께 머무시며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