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소식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12) 성 바오로 영성 ⑥

松竹/김철이 2011. 5. 3. 00:17

정신·지식적 발판 토대로 하느님과 영적합치 이뤄
강한 영적 내면형성으로 여러번의 수감생활 견뎌내

 

 

바오로 사도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보자. 필레몬이라는 공소회장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필레몬에게는 오네시모스라는 이름의 노예가 있었는데, 이 노예가 달아났다. 탈출에 성공한 노예는 고민에 직면한다.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노예의 몸에는 노예임을 알리는 문신 같은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런 몸으로 길거리를 다니다간 체포돼 사형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노예는 고민했다. “어디로 갈까….” 노예는 자신의 주인(필레몬)집에 머물며 감동적인 설교를 하던 바오로 사도를 기억해 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바오로 사도나 한번 찾아가 보자. 바오로 사도처럼 인자한 분이라면 자신을 받아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노예는 바오로 사도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소문을 듣는다.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노예는 체포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를 찾아간다. 죽음에 임박한 바오로는 감옥에서 이 노예에게 예비자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베푼다. 그리고 노예를 다시 필레몬에게 보낸다. 그러면서 이 편지를 작성한다. 다급하게 써서 주다보니 분량이 1장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은 성경 중에서 제일 짧은 서간이다. 내용을 보자.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필레 1,10-12)

노예를 돌려 보내는 것은 내 심장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노예 오네시모스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는 “그가 그대에게 손실을 입혔거나 빚을 진 것이 있거든 내 앞으로 계산하십시오. 나 바오로가 이 말을 직접 씁니다. 내가 갚겠습니다”(필레 1,18-19) 라고 말할 정도다.

노예는 이 편지를 들고 주인(필레몬)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이후 노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필레몬의 환대를 받으며 행복한 여생을 보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읽을 때 마다 ‘소유’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에게 “그가(노예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필레 1,15) 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잃은 것은 잃은 것이 아니고, 얻은 것은 얻은 것이 아니다.

바오로 사도는 요즘 말로 이야기 하면 감옥을 들락날락했던 분이다. 50세에 에페소 감옥, 53세에 가이사리아 감옥, 56~58세에 로마 감옥 등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영적 육체적으로 강인하지 않았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힘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하느님께 받은 영적인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필레몬서를 비롯한 많은 서간을 통해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얼마나 영적으로 강인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영적인 내면형성이 잘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바오로 사도는 어린 시절에는 정신적 차원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유학시절 학자들과의 교류에서는 지식적인 차원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 바오로 사도는 정신적 차원의 발판, 지식적 차원의 발판을 토대로 영적인 단계로 나아간다. 바오로 사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합치였다. 또한 수련 생활을 통한 지혜,수련생활 안에서 매순간 깨닫는 경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필레몬서와 같은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주님의 생애는 그렇게도 철부지같은 인간을 위한 철저한 나눔의 생애로 부서졌지만, 우리는 어찌 이리 소유를 위해서만 숨이 찬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가져 온 것이 없고 아무것도 가져갈 것 없는 순례자인 우리가 이기와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잠시 빌려 받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출처: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