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소식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11) 성 바오로 영성 ⑤

松竹/김철이 2011. 4. 30. 08:59

 

그리스도 향한 믿음 통해 진정한 화해 이뤄야
하느님의 의로움은 인간과 연관지을 때 의미 지녀
인간을 의롭게 하는건 율법 아닌 주님께 대한 믿음

 

 

로마서는 바오로 사도 신학의 결정판으로 불린다. 로마서는 동시에 바오로 사도가 쓴 편지 중 가장 마지막에 쓴 글이기도 하다. 친서 중 가장 마지막에 작성된 만큼 바오로 사도가 모든 정열을 쏟아부어 자신의 영성과 신학을 정립해 작성한 서간이다. 그래서 로마서를 보면 바오로 사도의 영성이 보인다.

‘하느님은 의로운 분이다.’

이것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전체에 흐르고 있는 큰 주제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의로움이 하느님 안에만 머물러 있을 때는 의미가 없다. 인간의 의로움과 연관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럼 이 의로움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1장 17절을 보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2)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만 되면 사람은 의롭게 된다.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왜 의롭지 못한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욕심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살기 때문에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의로운 하느님은 우리 인간도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복음(그리스도)이 우리에게 왔다. 복음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서 하느님처럼 우리도 의롭게 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의는 과연 무엇을 담고 있을까. 처벌이나 심판이 아니라 자비와 용서다. 하느님은 무한히 우리를 용서하신다. 하느님의 용서는 인간적 차원(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용서의 한계)를 넘어선 하느님 차원의 용서다. 무한대의 차원, 초월적 차원의 용서다.

이처럼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니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면 우리도 의롭게 된다. 우리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면 자비로울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이 우리를 의화(義化)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의화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바오로 사도의 영성이다.

믿으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의로운 관계가 된다. 그래서 구원이 이뤄진다. 인간은 원래 불의하다. 하지만 예수님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게 되면 이 불의한 것이 의롭게 변화된다.

바오로 사도가 한 유대인과 대면하고 있다. 그 유대인은 율법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느님을 자랑하고, 하느님 뜻을 알고, 율법을 배워서 분별할 줄 알고, 눈 먼 사람에게 길잡이가 되고,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에게는 빛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그는 율법에서 모든 지식과 진리의 근본을 터득하여 무식한 사람에게 지도자가 되고 철없는 자에게는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율법으로서 모든 것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고, 율법을 통해서 완덕으로 도달할 수 있고,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바오로 사도가 일침을 놓는다.

“그렇다면 남은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왜 그대는 도둑질을 합니까?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그대는 간음을 합니까? 우상을 혐오한다고 하면서 왜 그대는 신전 물건을 훔칩니까? 율법을 자랑하면서 왜 그대는 율법을 어겨 하느님을 모욕합니까?”(로마 2,21-23)

오늘날 우리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아집과 독선, 교만, 정형화된 사고, 영적 게으름을 늘 경계해야 한다.

중심은 그리스도다. 율법, 겉치레가 중심이 아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화해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로마 6,8 참조)

구원은 대충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당신의 은총을 계속 주기 때문에, 더 나아가 인간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계속해서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인간은 언젠가는 의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출처: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