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린토 교회는 말썽꾸러기 교회였다. 항구 도시였던 코린토는 향락의 도시였고, 미신을 믿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코린토 교회에서는 교리 문제 등 여러 가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에 장문의 편지를 쓴 이유다.
그럼 코린토 교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우선 당파 싸움 문제다. 코린토 신자들은 자신이 각자 추종하는 사도와 설교자들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에 서간을 쓴 이유도 바로 이 교회내 파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많은 ‘분열’을 목격한다. 이런 분열은 대부분 ‘조금 신앙생활 해 봤다’는 사람들에 의해 조장된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자신을 중심으로 놓고 교회와 신앙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개신교 교회에서 볼 수 있듯이 가톨릭 교회는 이미 수천 수만의 종파로 분열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내 말이 옳다’‘내 묵상이 절대 진리다’라고 말하지 말고, ‘공동체의 말’‘공동체의 묵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자.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한다.
분열 문제 못지않은 문제가 신자들간의 소송문제였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1코린 6,1-5)
이번에는 파벌간, 당파간 싸움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다툼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이 모이면 개인 간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도 인간이 모인 공동체인 탓에 ‘싸움’이 없을리 없다.
실제로 본당 공동체는 많은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악의적인 의도에서든 그렇지 않든 다른 신자에게 피해를 주는 신자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코린토 신자들은 교우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 법정에 가서 호소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경우가 많다. 교우들 간에 돈 문제가 생기면 법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같은 교우인데도 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법원에 고소장을 낸다.
고소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면 이렇게까지 하겠느냐’며 항변할 수 있다. 실제로 법에 호소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법정에 고소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1 코린 6,7)
받아들이기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다. 억울하고 하소연할 곳은 법정밖에 없는데, 당하면서 살라는 말인가?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지 말라는 말인가? 속시원한 해결책은 없을까.
본당 공동체의 다양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단초는 소공동체에 있다고 믿는다. 소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영적인 힘이 생기고 지혜가 생긴다. 이 세상의 각종 반목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느님이고, 그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영적인 에너지가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이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이 공동체 기도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가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소공동체 만남. 소공동체 기도. 소공동체 대화. 소공동체 안에서의 상호돌봄”이다. ‘법’과 ‘사랑’중에 무엇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법은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 법은 하한선이고 사랑은 상한선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교회안의 지혜로운 이를 찾아가자.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며 해결하도록 노력하자. 신앙인들만이라도 이제 지혜롭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 모범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공동체의 분열 기도·일치로 극복
당파싸움 팽배한 코린토 교회에 공동체 정신 호소
법보다는 지혜로 신자간 다툼 해결하는 자세 강조
당파싸움 팽배한 코린토 교회에 공동체 정신 호소
법보다는 지혜로 신자간 다툼 해결하는 자세 강조
정영식 신부·수원 영통성령본당 주임, 최인자·엘리사벳·선교사
출처: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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