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발표작

어머니의 빈 지갑/수필 (월간 한비문학)

松竹/김철이 2010. 7. 24. 01:04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인[因]과 연[緣]. 직접적으로 결과를 낳는 [인]에 대하여, 그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연]이라고 한다. 때로는 인 또는 연만으로 인과 연 양자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또 인연이라고 하여 어느 한 쪽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듯이 세상 인간사 모든 인연은 하늘이 내린 것이고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님에도 한낮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인력으로 맺어진 연은 당장은 좋아 죽고 못 살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탈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삶을 두고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라 말하고 싶다. 필연을 가장한 필연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사를 엿본다면 마치 유리관 속에 사는 것처럼 보기에도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 필연을 가장한 우연의 생을 이어가는 이들이 만약 부부라고 가장할 때 가정불화는 물론 살을 섞어 사는 부부긴 하여도 마음의 일치를 전혀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부부싸움 하지 않고 사는 사람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부부싸움도 잦으면 큰 다툼의 불씨가 되는 법이고 그러다 보면 아무리 가까운 무촌의 부부라지만 자칫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이렇듯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 무촌이라고 부부의 연도 자칫 잘못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심한 경우엔 평생 딱지조차 뗄 수 없는 마음의 큰 상처를 안은 채 그토록 좋아하던 부부의 연도 하루아침에 철천지원수의 연으로 등 돌려 갈라서는 실예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음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하기야 부부의 연을 무촌이라 했으니 반대로 표현하자면 등 돌리면 남남이라 했으니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도 될 수가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촌수로도 돌변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한평생을 사노라면 무촌이라 일 컸는 부부의 연에 못지않게 가깝게 느껴지는 연들도 흔히 볼 수 있음인데 예를 들자면 남성들은 어린 시절 같은 마을이나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아무 부끄럼 없이 아랫도리를 다 내놓고 함께 뛰놀며 자랐던 꼬치 친구의 연도 있을 것이며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주기만 하면 천진만 하게 좋아하던 코흘리개 유치원 시절 친구의 연, 초등학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의 고민도 많고 패기 또한 하늘을 찌를 듯이 많았던 학창시절 친구의 연, 성인이 되어 사회에 첫 걸음을 디뎠을 때 같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하던 직장 동료의 연이 있을 것이고 또 인생 황혼기에서 마음 하나 줄 곳 없을 시절 경로당과 같은 경로시설에서 만나 친구의 연을 맺은 벗도 있을 것이다.

여성도 남성과 별다른 건 없겠지만, 직장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 가사를 돌보는 경우도 있을 테고 대게의 여성들이 전문적으로 집안 살림을 하면서 자식을 낳아 기르며 그 과정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갖가지 연들이 남성에 못지않게 많을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아침식사를 마친 후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이 외출을 하고 나면 집안 청소다 빨래다 하여 한때를 분주하게 보내고 나서 잠시 휴식의 시간을 보내며 담장 밑 양지바른 곳에서 이웃에 사는 주부들과 실없는 수다를 떨던 수다 친구의 연이 있을 것이고 슬하에 공부하는 학생을 둔 학부모라면 자녀를 통해 알게 된 같은 자녀를 둔 엄마들의 연이 있을 것이다. 특히 감수성이 무딘 남성에 비해 감수성이 풍부한 편에 속하는 여성들은 남들에게 내색도 못한 채 속앓이를 하며 평생을 사랑하는 연인으로 가슴 한 켠에 소중히 품고 살다 이승을 떠나는 날 함께 품고 떠나는 연인의 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든 여자든 세상 첫날부터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잊지도 끊지도 못할 것이 천륜(天倫)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살림살이나 가정의 살림살이가 넉넉해지고 윤택해질수록 천륜이라는 단어가 퇴색되어 가는 듯싶고 그 본연의 빛을 잃어가는 듯하여 가슴이 아파 심히 아려온다. 우리나라 역사를 잠시 살펴본다면 대대손손 하늘이 내린 효자도 많고 효녀도 많으며 효부, 열녀도 많은데 나라의 살림이 궁핍하여 못 먹고 못 입던 그 시절에 비해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려 하는 이즈음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孝)의 자녀가 줄어들고 같은 부모의 슬하에서 같은 피와 살을 타고 태어난 형제간의 우애(友愛)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눈만 돌리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접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하여 입맛이 쓰고 개탄을 금치 못할 심정이다. 또한, 세상 부모님들 자녀를 낳아 기르실 적 부모님께 성을 다해 효도(孝道)하고 한평생 형제를 생각하되 내 몸처럼 여겨라. 하셨으니 효우(孝友) 정신을 늘 가슴에 새기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자녀 된 도리가 아닐까 싶다.

한 가지 더 가슴 깊이 새긴다면 슬하에서 같은 살과 피를 타서 태어난 형제 역시 부모님을 생각하고 늘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네 살림살이 궁핍한 삶에서 해방되어 생활이 넉넉하고 윤택해진 만큼 생각도 한층 더 커져야 하며 부모님을 섬기고 형제를 생각하는 마음도 더욱 성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일지인데 어떻게 된 것이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엔 분명히 따뜻한 정이 있었으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온화한 눈물이 있었던 반면에 나라 안 살림살이고 국민 각 가정의 살림살이고 여유가 생기고 윤택해진 요즈음 사람들을 접할 때 여유로운 마음들이 점차 폭이 좁아져 가며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들은 전멸해 버린 지 이미 오래전 전설 속 이야기로 멀찌감치 물러나 앉아있음이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우리네 선조께서 입만 여시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이미 자취도 없어 실종되어 버린 지 오래된 설화 속의 이야기로 입과 입을 통하여 전해져 올 따름이다.

홀로 있을 시간이면 곰곰이 생각하고 되새김질한다. 충효(忠孝)를 그토록 깍듯이 지켜오던 우리네 국민이 어이 타 이다지도 깊은 이기주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도를 넘어 기본적 자존심마저 헌 고무신 신짝 내다 버리듯 하는지를 그럴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숨이 오르락내리락, 산 좋고 물 좋아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입이 닳도록 칭송을 들었던 그 나라 어디로 갔고 사람 좋고 인심 좋아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다른 민족들 침이 마르도록 늘 부러워했던 그 민족 어디로 갔는지 심히 궁금해 질 따름이다.

우리네 부모님들 자식을 낳아 기를 적 다 같이 열 달을 적지 않은 고초 속에 배속에 담아 키워 주셨고 죽을 고통 다 겪어 배밖에 낳아주실 적에 형제를 한 몸으로 여기되 세상에 낳아주신 부모님 먼저 가시니 부모를 대신하여 형제를 부모 대하듯 하라 하셨는데, 이틀 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못 볼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개밥 먹는 남자인데 사지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40대 남자가 개의 사료를 먹고산다는 것이다. 천벌을 받아 마땅하고 사지를 찢어 죽인다 하여도 분이 충분히 풀리지 않을 행위, 개의 사료를 먹고산다는 40대 그 남자는 어느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듯 차마 사람이 산다고 표현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본의 햇살마저 외면해 버린 단칸 골방에서 24시간을 거의 누워서 생활했는데 누군가 갖다준 개의 사료를 먹은 후 대, 소변은 이불 위에 앉은 채 그냥 방뇨, 누구의 제보로 사실을 알게 된 취재진이 그 집에 도착했을 땐 맞이해 주는 것은 방안 가득 차있던 지독한 악취일 뿐, 취재진이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몰래 숨어 잠입취재를 하던중 기가 막혀 어이가 없고 인신공분(人神共憤)할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남자의 남동생이 앉아있던 남자에게 무차별 발길질 세례를 퍼 붙는 것이 아닌가? 시장 난전에서 과일장수를 하며 늘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남자의 동생은 제대로 한번 보살펴 주지도 않았으면 똥을 쌌다며 축구공도 아닌 형에게 발길질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귀찮아 여기며 돌보지도 않을 것 같으면 형을 장애인 시설에 맡기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남자의 동생은 죽을 때까지 형과 함께 살겠다는 말도 되지 않은 억지를 부렸는데 알고 보니 형의 앞으로 정부 보조금과 장애인 수당이 지급되고 있었으며 생활이 어려운 동생은 그 돈을 착복해 왔던 것이었다. 그 후 장애인 시설에 의탁하게 된 남자는 몇 달 사이 표정이 무척 밝아져 있었고 살아있되 산 사람으로서 표정도 감정도 없었으며 실어증에 걸린 듯 말 한마디 없었던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피고 화색이 돌았으며 자신의 감정과 표현을 확실하게 하더라는 것이다. 그 동생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대는 부모도 형제도 없이 허공에서 떨어졌고 개천에서 솟았느냐고...?

그 남자와 거의 흡사한 장애를 지닌 나는 신께 참으로 감사를 드린다. 내게 우리 가정, 우리 가족들을 내려주셨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채 하늘나라에서 매순간 날 지켜보시고 계실 부모님과 내색은 잘 하지 않지만, 속 정이 남달리 깊은 나의 형제들, 나의 남은 인생 여정에 동행할 나의 아내, 이들 모두는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재산이자 크기를 자로도 잴 수 없으며 무게 또한 저울로 달 수 없는 크나큰 보배이다. 태어나 지금껏 받았던 사랑과 정은 태산과 같을 터, 벌써 고인이 되신지 3년을 넘기신 부모님 살아생전에 두 분께 반평생 동안 받았던 하늘과 같고 바다와 같은 그 사랑, 부모님 이제 가고 계시지 않으니 부모님 전에 갚을 길은 없지만, 부모님 내게 주셨던 그 크신 은공 영혼에 길이 새겨 곁에 남은 가족들에게 남은 삶 동안 나누어 주려 하였건만 하늘에 계신 부모님 이승에 계실 적에 내게 주셨던 그 사랑, 아직도 남아 있는 듯 가신지 3년이나 흘렀으니 잊으실 만도 하련만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저승과 이승의 길이 얼마나 먼지 짐작으로 대충 잡아 천 리 길도 더 될 것이 분명할 지인데 그 멀고도 먼 길을 멀다 않고 며칠 걸러 한 번씩 꿈길에 찾아오시어 기쁘고 좋은 일만 골라 미리 일러주시더니 그것도 부족하여 어머니 살아생전 애지중지 아끼시던 빈 지갑 속에 당신 혼을 담아 이 못나고 불효막심한 자식 놈의 가정을 지켜주시는 듯한 일이 요 며칠 전 있었다. 그날은 아내가 집안 이곳저곳 청소를 시작하였으며 잠시 후 화장대 서랍을 정리정돈 하다 말고 "오빠. 이게 여기 있었네." 라며 한 마디 탄성을 질렀다. 컴퓨터 글 작업을 하다 속으로. "무엇을 가지고 저렇게 호들갑일까."라고 생각하며 작은 방과 큰 방 사이 문턱에 다리를 걸친 채 무심코 바라보니 어머니의 빈 지갑이 아내의 손에 들려있는 게 아닌가? 순간 정신이 총명해지며 눈이 크게 띄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뵙는 듯한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어머니의 그 지갑은 거의 30년 전 가죽으로 만들어진 손지갑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되던 해 내가 용돈을 모아 어머니 생신 선물로 사 드렸던 것인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당신의 그 어떤 물건보다 소중히 간직하셨던 소지품이었다. 그 지갑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아내가 어머니의 유품 삼아 간직해 오던 것이며 소중히 간직해 둔다는 생각으로 화장대 서랍 속에 넣어 두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지갑 속엔 그리 멀지 않은 시절, 서민들이 버스를 탈 때에 요금 대용으로 사용했던 버스 토큰과 옛날 1원권 주화 몇 개가 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 행여 아내가 눈치라도 챌까 싶어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지만, 그 지갑 속엔 어머니의 영혼이 들어 계셔 아내와 나, 우리 두 식구를 늘 지켜주시는 듯하여 한편으로 든든한 마음 감출 길 없고 역시 이 세상 그 어떤 인연보다 질긴 것이 천륜(天倫)이며 그 천륜(天倫)은 누구도 감히 끊어 놓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깨 닿게 해 주신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