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자료 모음방/애송 동시

제 12 편 퐁당퐁당

松竹/김철이 2010. 6. 29. 00:12

제 12 편 퐁당퐁당

 

윤 석 중
귀를 간질이는 소리 '퐁당'
신수정·시인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 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어 주어라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퍼질 대로 퍼져라

고운 노래 한마디 들려 달라고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어 주어라


<1932년>

▲ 일러스트 윤종태

소년은 심심하다. 같이 놀 사람이 없다. 형은 두렵고 동생은 귀찮다. 만만한 누나와 놀고 싶은데 누나는 엄마 일을 돕느라 분주하다. 냇물을 사이에 두고 남매가 앉아 있다. 소년은 괜히 장난기가 발동한다. 퐁당, 누나에게 돌을 던진다. 누나의 옷에 물이 튀었을지도 모른다. 누나는 가볍게 눈을 흘기며 하던 일을 계속한다. 퐁당퐁당, 드디어 소년은 재미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돌을 던지며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질어 주어라'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낮에 나온 반달〉, 〈달맞이 가자〉, 〈새나라의 어린이〉 등 '윤석중 작사 홍난파 작곡'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고 할 이 시의 묘미는 단연코 이 '퐁당퐁당'이라는 소리에 있다. 이 의성어는 이 시에 내재해 있는 리듬감의 근원이다. 퐁당퐁당, 돌은 물과 만나 소리를 만들어내고 소년은 누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친다. 냇물이 흐르는 것처럼 아이들도 자라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도 퐁당퐁당 소리는 남아 우리 귀를 간질인다. 노래란 무엇인가. 윤석중에게 그것은 바로 이 '소리'를 포착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칙칙 폭폭 칙칙 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기찻길 옆〉), 또 " 개굴개굴 개굴 개굴개굴 개굴/ 물논에서 개구리 떠드는 소리/ 두고 봐라 내일 갠다/ 개굴개굴 개굴 개굴개굴 개굴/ 내기할까 개굴개굴 개굴/ 내일 날씨 가지고 서로 다투네"(〈개구리〉) 같은 시들은 이 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의 절정이다. 이들에게서 소리는 모양이자 의미이며 그 자체 주제의 차원으로 승격되어 있기도 하다. '칙칙 폭폭'과 '개굴개굴'이 없다면 시도, 노래도 없다.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3년 세상을 뜨기까지 일천여 편의 시를 생산해온 윤석중은 〈고향의 봄〉의 이원수와 더불어 한국 동시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만하다. 그에 이르러 우리 동시는 드디어 짙은 감상주의의 그늘을 벗고 밝고 명랑한 소리 본연의 리듬감에 주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덧씌우기를 거부했다. 아이들은 심심해하다가도 곧바로 퐁당퐁당, 놀이 본능을 회복하는 동적인 존재들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존재의 기쁨은 아무나 감지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유희할 줄 아는 자만이 이 무구한 환희의 세계에 당도할 수 있다. 윤석중의 동시는 새삼 이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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