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자료 모음방/애송 동시

제 11 편 담요 한 장 속에

松竹/김철이 2010. 6. 24. 12:46

제 11 편 담요 한 장 속에

 
 
권 영 상
한밤중에 내 발을 덮어주시던 아버지…
장석주·시인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 일러스트=양혜원
아버지에게 아들은 "타자화된 자기"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는 뜻이겠다. 아버지가 묵은 가지라면 아들은 거기에서 뻗은 새 가지다. 아들은 침몰하는 배에 탄 아버지를 구하는 구조선이라고 생물학자는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제 생명으로 이음으로써 아버지를 구한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한 담요 속에 누웠다. 한 담요를 덮고 나란히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고, 아들은 돌아누워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담요 바깥으로 빠져나온 아들의 발을 덮는다.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에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곡진한 사랑이 듬뿍 묻어 있다.

내 아버지는 1929년생이다. 전쟁 통에 양친을 다 잃었다. 그 뒤론 신산스런 삶이었다. 부모 잃고 가진 것 없이 험한 세파에 시달리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외로움인지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아버지의 장남인 나는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천하의 정약용도 아버지 노릇은 쉽지 않았다. 끼닛거리가 떨어지자 옆집 호박을 따다 죽을 끓인 여종을 닦달하는 아내를 말리며, "아서라, 그 아이 죄없다. 꾸짖지 마라" 했다. 식솔을 가난에 방치하고 책이나 읽고 벗들과 어울린 것을 크게 부끄러워하며, "나도 출세하는 날이 있겠지. 하다못해 안 되면 금광이라도 캐러 가리라" 했다. 뒷날 정약용은 "내가 남의 아비가 되어서 너희들에게 이처럼 누를 끼치는 것이 부끄럽다"라고 썼다.

권영상(55)은 한 담요를 덮고 누운 아버지가 한밤중에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잠드는 광경을 그려낸다. 이렇듯 아버지는 평생을 아들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남몰래 애를 쓴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슴에 품고 거두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모른다. 그 진실을 모르니, 늘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고 툴툴거린다. 나 역시 뒤늦게 깨닫는다. 내 불만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아버지는 세상에서 이룬 것과 상관없이 존경받아야 할 영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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