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시집

감나무 (꾼 중에서)

松竹/김철이 2008. 12. 5. 19:18

감나무                      

                           - 松竹 / 김철이 -

동지섣달 긴긴 밤을
허허벌판 기둥이 되어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누구를 그다지도 그리워하는 것일까

이미 죽어 말라버린 갈색 늙은 몸집 하나
또한 이미 죽어버린 생명으로 느껴지는
흙 알갱이 사방으로 뻗친 뿌리 손 움켜쥐고
다가올 먼 미래를 위해 손을 모으는
초라한 생명

고목에도 꽃은 피는가…
몇 달 며칠,
한겨울 거센 바람에 벌거벗은 몸으로
홀로 섰던 서러움도 한 점 계절풍에 날려보내고
잎 넓은 가슴으로 다시금 새 삶터 잡아가는
연녹색 부활

못 먹고
못살던 그 시절
향학열에 불타는 가난한 선비들
때로는 붓이 되어주고
때로는 종이가 되어주었던
희망찬 미래

춘삼월 따슨 사랑의 품속에
연초록 가슴을 열어
진초록 소박한 미소 가득 담고
온 유월 뙤약볕 신랑을 맞이하여
빈 창공 춤사위도 화려한
벌, 나비 들러리 삼아
시월의 감나무 골로 시집가는
감꽃 새아씨

인심 좋은 시월 마을 시집간
감꽃 새아씨 부끄럼도 많아
새하얀 앞치마 진초록 입에 물고
가는 세월 오는 세월 계절풍 따라
몸도 마음도 넉넉하고 풍요롭게 커가더니 마침내,

늘 풍요로운 가을의 들녘을 독차지하며
붉게 영글어 이다음 부족한 계절
한겨울 들녘에서도
늘 자신을 내어주는
풍요의 원천

'개인♡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롱불 (꾼 중에서)   (0) 2009.01.12
에델바이스 (꾼 중에서)   (0) 2008.12.11
추석 (꾼 중에서)   (0) 2008.12.05
산호수 (꾼 중에서)  (0) 2008.12.01
고엽 (꾼 중에서)  (0) 2008.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