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다

그곳에 오르면 눈·발·입이 즐겁다

松竹/김철이 2008. 7. 11. 16:58
그곳에 오르면 눈·발·입이 즐겁다
남양주 천마산 (812m) - 짙푸른 녹음… 푹신한 등산로… 이 시린 샘물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수진사 코스로 올랐을 때 정상 직전에서 만나는 계단길.

정상 안부의 능선길
백두대간의 금강산 위쪽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漢北正脈)은 강원도와 경기도 북쪽으로 남진하다가 대성산, 광덕산, 운악산을 솟구친 뒤 철마산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 천마산(天摩山·812m)으로 솟아난 다음 한강을 만나며 그 여정을 끝낸다. 천마산은 지금이야 교통이 좋아 서울의 인근처럼 느껴지지만 조선시대에만 해도 임꺽정의 활동무대라고 할 만큼 오지였던 모양이다. 또 주변에 그다지 높은 산이 없어 옛적에는 이 산을 무척 높게 보기도 했다.

양주군에 속해 있던 조선시대부터 이 지역 주민들은 천마산을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인 ‘화수분’이라고 불렀다고 시지(市誌)에는 기록돼 있다. 그 이유인 즉, 봄이면 산나물, 여름이면 누에를 키우는 뽕잎, 겨울이면 땔감을 대주는 등 생활의 터전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천마산이 그 주변을 지켜주는 말 그대로 진산(鎭山)이었던 것이다.

천마산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에서 나온다. 조선 개국 전, 사냥을 나온 이성계가 산이 높고 험준함을 보고, ‘석자만 더 길었으면 가히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手長三尺可摩天)’라고 한 데서 천마산(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근거 사료는 없는 얘기지만, 그 정도로 옛날에는 이 산이 높아 보였다는 말이 된다.

천마산의 옛 이름이 ‘영적산’이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경기북부 구전자료집’(박이정출판사, 2001)에 보면, 천마산 남쪽 화도읍 노인들의 증언에는 천마산이 옛날에 영적산이라 불렸는데, 그 이유는 정상 산봉우리가 고개를 숙인 모양이라서였다고 한다. 경춘선의 평내호평역에서 내려 바라보면 죽 늘어선 천마산 능선 최고봉이 언뜻 고개를 숙인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고개를 숙인 것과 ‘영적산’이란 이름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설명이 없다. 시문화원에 물어봐도 금시초문이란다. 천마산을 ‘소박 맞은 산’이라고도 했다는데, 이 역시 외지고 산세가 험해서 그랬다지만 지금 보면 의미가 없는 별칭이다.

그보다 천마산에는 걸출한 인물들과 얽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많다. 남양주시 향토사료관의 임병규 관장에 따르면, 천마산 서쪽 자락인 진건읍의 견성암과 독정리는 바로 풍양조씨의 시조이자 고려건국 직후 문하시중을 지낸 조맹과 관련된 사찰과 땅의 이름이다.

조맹은 구척(九尺)의 장수이자 도인으로, 세상을 등지고 견성암에서 도를 닦았고 그 옆에 혼자 쓰던 우물이 ‘독정(獨井)’이었다. 왕건이 사직의 안녕을 위해 조맹을 찾았고, 점괘를 통해 이를 미리 예견한 조맹이 견성암으로 숨었으나 왕의 추격대가 조맹의 세수대야만 한 짚신 한짝을 발견하고 그를 찾아내 개경으로 데려가 중용했다는 것이다. 남양주는 아주 옛적엔 풍양골로 불렸는데 거기에서 풍양조씨가 유래했다.

천마산 북서 자락의 오남면 괘라리는 조선시대 연산군-명종 시대를 살다간 도인인 북창 정염이 터를 잡고 살았던 곳이다. 용호비결(龍虎秘訣) 하면 누군지 금세 알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선가(仙家)에서는 수단지도(修丹之道)의 귀중한 요결로 전해지는 책이다. 북창의 동생 정작은 허준이 동의보감을 쓸 때 참여해 내단적 양생술을 근본으로 한 처방전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괘라리란 이름의 유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두 형제와 무관한 이름은 아닌 듯하다. 천마산이 수행 또는 수도와 연관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북동 자락 가곡리(옛 이름은 가오실)는 조선말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1814~1888)의 고향으로, 이유원가는 여섯 아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한 명문가다. 명산(名山)의 정기를 따라 걸출한 인물들이 천마산 자락에 터를 잡아 살았다.

‘태조 이야기’처럼 사료는 남아있지 않지만, 임꺽정패가 천마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전설도 있다. ‘구전자료집’에도, 지금은 마치터널이 뚫린 산 남쪽 화도읍 묵현리 마치고개에서 임꺽정패가 자주 출몰했으며, 고개를 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아래 원터라는 곳에서 사람들을 기다려 숫자가 차야 대낮에 넘어다녔다는 것이다. 숫자를 채우려면 며칠씩 걸리기도 해, 그 근처 종가에서 기다리는 나그네들을 위해 밥을 해놓기도 했다고 한다. 임꺽정 패는 근처 하남에 있던 당시 우(牛)시장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천마산에는 임꺽정 바위가 있는데, 모양새는 작고 볼품이 없다.

천마산은 서울 북동쪽 끝에서 약 3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기차나 버스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표적인 근교 명산 중 하나다. 정상부근 795봉은 암릉이 제법 볼 만하며, 활엽수림이 울창해 가을단풍도 좋다. 천마산 단풍이 최고라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산행코스는 호평동 수진사 입구에서 왼쪽 능선을 타거나 오른쪽 매표소를 지나 천마의 집을 거치는 길, 마치고개 북쪽 능선길, 묵현리 수련장 입구에서 깔딱고개를 통하는 길, 가곡리에서 깔딱고개를 통하는 길 등이 있다. 가곡리에서 보광사를 거쳐 괘라리고개를 타는 코스는 출입이 통제됐다. 구간이 위험해 코스를 폐쇄했다는 게 관리사무소의 설명인데, 지도상에는 코스가 그려져 있어 헛갈리기 쉽다.

지난 7일 하루 종일 안개가 자욱한 날 천마산을 찾아 수진사 매표소 코스를 택했다. 청량리에서 오전 7시57분발 경춘선으로 평내호평역까지 40분 정도면 닿는다. 버스로는 1시간 남짓 걸린다. 당초 795봉을 지나 괘라리고개에서 보광사 방면으로 내려올 계획이었으나 고개에서 출입통제 푯말을 만나 다소 방향감각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 돌핀샘 방면으로 내려오게 됐다. 정상 안부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7부 능선쯤에서 돌핀샘을 만난다.

암반에 둘러싸인 돌핀샘에 다다르니 50대쯤 보이는 남자가 마침 바지를 걷어붙이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차! 물맛을 못 보고 가나’ 걱정했는데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자칭 ‘천마산 강쇠’라는 그는 1년에 두 번씩 자신이 샘 바닥에 가라앉은 흙을 긁어내는 청소를 한단다. 그러면서 돌핀샘이 북한의 신덕샘물과 지리산의 장터목샘물에 이어 ‘감로(甘露)성분’이 가장 많은 샘물이라며 너스레를 놓는다. ‘감로성분’이란 건 애시당초 듣도 보도 못한 것인데, 어쨌든 자신은 이 약수를 상음하면서 ‘강쇠’가 됐다나 어쨌다나…, 그러고는 청소를 끝낸 뒤 직접 물을 받아준다. 조금 과장해서 이가 시리도록 차고 달다. 물맛을 보니 ‘강쇠’의 너스레가 허접한 것만은 아니었다. 돌핀샘을 놓치지 마시라.

거기서 천마의 집 쪽으로 내려오는, 산을 비스듬히 타는 숲길은 걷기에 좋다. 푹신한 등산로며 눈을 시원하게 하는 짙푸른 녹음…, 죽 미끄러져 내려오는 하산길보다 부담도 적고 주변 경관을 여유있게 보면서 내려올 수 있어 좋았다.

글·사진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등산코스>

▲천마산 관리소(10분)→심신 훈련장(25분)→야영장(25분)→깔딱고개(40분)→뾰족봉(20분) → 천마산:2시간

▲수진사입구 마을버스종점(32분)→천마의 집(51분)→주능선 안부(7분)→천마산:1시간30분

▲가곡리버스종점(1시간 10분)→넘어골(1시간 15분)→천마산:2시간25분

<대중교통>

-버스▲청량리 역(호평동 가는 165번, 165-2번 버스)→호평동 종점에서 마을버스→수진사 앞 종점 ▲청량리 역→(마석 가는 버스) 마석터미널에서 가곡리행 마을버스

-기차 ▲경춘선 평내호평역이나 마석역에서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