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99-12사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3)-베드로(하)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뜻으로 케파, 곧 베드로라는 이름을 예수님께 받은 시몬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의 맏이로서 교회를 이끌기 시작합니다. 이번 호에는 주님 승천 후부터 순교에 이르기까지 베드로 사도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내 양들을 돌보아라"는 간곡한 당부를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먼저 배반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 대신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될 사도를 뽑는 일을 주도합니다(사도 1,15-26). 그리고 마침내 오순절에 성령을 가득 받은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굳세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평범하고 무식한 어부 출신의 베드로가 성령을 받아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랍니다. 놀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회개합니다. 베드로의 첫 오순절 설교를 듣고 신자가 된 이들이 삼천 명이나 됐습니다(사도 2장).
나아가 베드로는 예수님 이름으로 불구자를 고치는 첫 기적을 행합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 달려온 백성들에게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3장). 그로 인해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이가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됐다고 합니다(사도 4장).
사도행전 전반부는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뿐 아니라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며 또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하는 등 박해 받는 모습을 곳곳에서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삶은 베드로 사도가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후 베드로 사도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요? 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갈라 2,9)이라고 불렸습니다. 교회 기둥으로서 베드로 사도가 수행한 대표적 역할은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빚어진 할례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모여서 한 회의입니다. 할례 논쟁은 일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도 모세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고 나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빚어진 논쟁입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유다인이나 이방인에게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시며, 이방인이나 유다인이나 할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설파함으로써 할례 논쟁을 종식시키는 데에 주도적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루살렘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지중해 해안도시인 카이사리아와 야포 같은 인근 도시들은 물론 안티키아와 갈라티아 같은 소아시아 지역에서도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또 일부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가 그리스 도시인 코린토에서도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들 소아시아 지역과 그리스 도시들에서 실제로 지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만약 이들 도시들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이 도시들에서는 주로 유다인을 찾아 복음을 선포했을 것입니다. "할례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주셨다"(갈라 2,8)는 바오로 사도의 말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이 말에서 할례받은 이들은 유다인을, 다른 민족들은 이방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안티오키아를 거쳐 말년에는 로마로 갔으며 그곳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또 순교한 때는 정확히 언제인지는 전해지는 기록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기록은 로마에서 25년 동안 살았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연도도 기록에 따라 빠르게는 55년부터 늦게는 65년 또는 67년 등으로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네로 황제의 대박해 때에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서 순교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바티칸 언덕에 오늘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 우뚝 서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무덤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대 아래 지하에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자신같이 부족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릴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또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지만 자신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기를 자원했다고 하지요.
또 베드로는 평소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또 특히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것을 가슴아파하며 눈병이 날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벽에 첫 닭이 울때면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몹시 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쇠와 함께 새벽 닭도 베드로 사도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이창훈 기자
출처: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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