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서간' 해설] 18.“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5)바오로의 해결책
바오로는 자신의 복음선포로 생겨난 코린토 교회가 복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들의 삶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기시키곤 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느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구원사건이다(1코린 1, 13.17~18.21~24.30 ; 2, 1~5.6~13). 그러나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십자가 사건과 그 선포를 깨닫지 못해(1코린 2, 6~16) 그것을 무능과 어리석음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느님의 힘이요 지혜요 영이다(1코린 1, 18.21.23.30 ; 2, 4~4.10~13). 그러므로 신자들은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갈라서지 말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신 그리스도”(1코린 1, 30)에 대한 신앙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섬겨야 할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 또한 바오로나 아폴로나 케파와 같은 선교사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드러난 하느님의 신비를 전하는 일꾼들, 협력자들, 관리인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1코린 3, 5.9 ; 4, 1).
선교사들은 결코 교회의 주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봉사자들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바오로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기라도 하였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오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1코린 1, 13)라고 하면서 선교사들이 코린토 신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처형된 적도 없고 신자들이 선교사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일도 없는 만큼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편을 가르는 일을 하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1코린 3, 6~7)라는 말로써 선교사들이 입으로 전하는 그리스도 사건을 이해시켜 그리스도 신앙을 신자들 마음속에 싹트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심을 분명하게 일깨워주었다.
끝으로 바오로는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1코린 3, 22~23)라고 언급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굳이 서열을 정한다면 하느님, 그리스도, 신자들, 선교사들의 순서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불륜과 송사 : 1코린 5. 6장>
사도 바오로는 이교 세계에 사는 코린토 교회 교우들이 공동체에서 저질렀던 불미스러운 윤리적 폐단들을 소문으로 전해 듣고(5, 1), 불륜(5, 1~13 ; 6, 12~20)과 교우끼리의 송사 (6, 1~11) 문제를 다룬다. 이 윤리적 폐단들은 개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성전인 공동체의 거룩함을 해치는 행위들이다.
1) 불륜
5장 1~13절과 6, 12~20절에는 두 가지 불륜이 언급되고 있는데, 5, 1~13의 불륜은 근친상간을, 6, 12~20의 불륜은 탕녀와의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리킨다. 유다인들은 근친상간을 싫어했으나(레위 18, 6~18) 당시 지중해에 사는 이방인들은 자주 근친끼리 결혼하였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근친상간을 하느님의 성전인 공동체의 거룩함을 깨뜨리는 악행으로 여겨 배격하였으며, 바오로 역시 불륜을 모든 악행 목록(갈라 5, 19~21 ; 1코린 5, 10~11 ; 6, 9~10 ; 2코린 12, 20~21 ;로마13, 13)에서 언급하였다.
바오로가 현재의 코린토 전서에 앞서 써 보낸 편지(1코린 5, 9)에서도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불륜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동체 내에서 행해졌던 비행이었다.
5장 1~13절에 나오는 근친상간은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행위를 말한다. 아버지의 아내는 레위 18장 8절에 비추어 볼 때 ‘계모’를 가리킨다. 다만 이 여인이 아버지와 이혼이나 사별한 상태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살아계신데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지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긋나는 것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었다. 이런 비행은 공동체의 순결함과 거룩함을 깨트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이런 일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출처 :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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