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15

말씀의 이삭 | 그분, 데레사 님을 기리며

그분, 데레사 님을 기리며 양양성당의 데레사 님. 그분은 지금 지구에선 만날 수 가 없습니다. 1936년 11월, 강원도 양양의 사천리에서 태 어나서 2019년 2월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다행 히 일곱 아들을 남겨 두셔서, 아드님들이 어머니 1주기에 맞춰 글을 남겼습니다. 2020년 2월 22일에 펴낸 〈그리운 어머니〉가 그 책입니다. ‘회고와 추모’의 글인데, 비매품 입니다. 저는 인연이 있는 세 번째 아드님으로부터 책을 받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읽기 시작하고 손에서 한 번도 놓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주 긴 책이 아니기도 했지만, 내 용의 아름다움과 진실 때문에 푹 빠졌습니다. 마치 물속 의 고기나 흙에서 자라는 풀, 꽃, 나무, 바람과 구름, 별처 럼 그리고 지구에 사는 모든 존재의 그 ..

세대간 소통 2025.05.27

말씀의 이삭 | 다른 생명으로부터 배우기

다른 생명으로부터 배우기 눈이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그런 날씨에도 절기 에 맞춰 푸른 생명들이 눈 덮인 흙 속에서 뾰족이 순을 틔우고, 그리고 메마른 나뭇가지에선 꼭 여드름 같이 보 이는 움을 틔우는 걸 바라보면 새삼 눈물겹도록 경이롭 습니다. 저도 엄마가 돼서 아이를 낳고 키울 때가 있었지만 그 땐 저의 인간 실존으로서의 열등감, 분노 따위가 한꺼번 에 솟아올라 사람 생명의 경이로움에 눈물겨울 틈도 없었 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제가 하고 싶었으되 하지 못했 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마구 투사하는 것, 엄마로서 제가 저지른 죄 중에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벌써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 는 동안, 자식들에게 용서도 많이 빌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 잘못의 원인에..

세대간 소통 2025.05.20

말씀의 이삭 |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요즘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마치 기다리기라 도 했던 것처럼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일 입니다. 지금도 살고 있는 길음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였습니다.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셨습니다. 강론을 듣는 내내 감동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씀 하나가 있습니다. 신부님께선 어떤 일에 대한 판단을 내 려야 할 때, ‘당신의 판단이 옳은가? 가장 온전한 판단인 가?’ 질문하고, 그 답을 찾기 어려울 때면 예수님께 묻는 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결정하셨을 까. 예수님이시라면⋯.’ 예수님께 기도드리고 기도의 응 답을 받아 결정을 내린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그렇다! 예수님이시라면 이럴 때 어떤 결정을..

세대간 소통 2025.05.13

말씀의 이삭 | 성모님의 눈물

성모님의 눈물  그해의 성탄 전야 미사를 저는 어느 대형 성당에서 맞 았습니다. 성당 입구는 미리 온 신자들로 가득했고, 저처 럼 늦게 온 신자들은 지하 성당으로 내려가 미사를 보라 는 거였습니다. 우르르 몰려가 지하 성당에 자리를 잡고 바라보니 앞에는 미사 중계용 대형 TV 모니터가 설치되 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이럴 수가! 그 모니터에 는 커다랗게 ‘고장’이라고 쓴 A4용지 한 장이 털썩 붙여 져 있었습니다. 대림 기간 동안 이 성당은 모니터는 고치 지는 않고 ‘고장’이라 쓰고나 있었단 말인가. 미사가 시작되고, 지하 성당의 우리들은 화면도 소리 도 먹통인 고장 난 모니터를 바라보며 묵묵히 앉아 있었 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대성당으로 통하는 문 옆에 앉아 있던 자매 한 분이 모깃소..

세대간 소통 2024.10.01

말씀의 이삭 | 과달루페의 성모님

과달루페의 성모님  세례를 받고 난 사흘 후, 저는 중국 상하이 공항에 홀 로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긴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어쩌다가 그런 버릇 이 생겼는지 무언가 초조할 때도, 하릴없이 혼자 있을 때 나 하다못해 신문을 읽을 때까지도 어김없이 손톱을 물어 뜯으며 지냈습니다. 손톱을 깎아본 적이 없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설렘과 이제부터 천주교 신자로 어떻 게 살아갈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퇴퇴 손톱을 물어뜯 으며 앉아 있던 그때, 그냥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이 제 제가 주님의 아들이 되었잖아요. 주님께서 주신 몸을 제 이빨로 제가 물어뜯어 퇴퇴 내뱉고 있는 이 버릇! 이거 좀 안 하게 해 주세요. 저도 지겹거든요.” 탑승 안내 방송을 들으며 비행기에 오른..

세대간 소통 2024.09.25

말씀의 이삭 | 용서를 위하여

용서를 위하여  최양업 신부님의 생애를 그리는 소설 《아, 최양업》의 연재를 시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제가 청주교구 장봉훈 주교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였습니다. 주교님이 탄식처 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오묘함이라니⋯.” 최 신부님의 숭고한 생애를 널리 세상에 알리기 위해 소설이나 드라마는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주교님은 오래 전부터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랬는데 자신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소설가 하나는 또 소설 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이것이 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오묘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탄식이었습니다. 주교님의 축복과,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실 것을 간절히 청하고 주교관을 나왔습니다. 주차장에는 드넓은 광장이 햇빛 속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빛의 화살..

세대간 소통 2024.09.17

누룩 | 어떤 기적

어떤 기적  금빛 억새로 유명한 간월재 아래 산죽 숲속의 죽림 굴(대재공소)은 경신박해(1860년) 때 최양업 신부가 4개월여 은신했던 곳이며, 당시 24세에 불과한 동정 녀 김 아가다가 선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가기 위 해서는 배내골 주차장에서 3.2km의 산길을 올라야 한다. 처음에는 수월하게 시작되는 임도가 나중에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로 가팔라진다. 지난 6월 말, 30여 년 전 죽림굴의 소중함을 세상에 드러낸 김영곤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미사(*하반기 9월 ~11월 매주 금요일 11:00)를 봉헌할 기회를 가졌다. 동행 한 세 분이 육십 대 후반에 이르는 자매님들이라 체력 의 한계에도 강행한 길이었다. 순례길은 박해의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듯 어려움이 따랐다. 자매님 한 분의 걸음이 점..

세대간 소통 2024.09.14

말씀의 이삭 | 내가 부를 백조의 노래

내가 부를 백조의 노래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용서를 위하여》 를 펴냈을 때였습니다. 잘 아는 스님 한 분이 그 책 여러 권을 사서 가까운 분들에게 보내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들려온 말이, 제 가슴에 칼이 되어 꽂혔습니다. 스님이 그분들에게 읽고 난 소감을 물었더니, 책 이야기 는 없이 첫 마디가 대뜸 “이 사람, 아직 살아 있어?” 하더 랍니다. 이제 저도 그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매일매일 나이만 큼 절망하고, 나이만큼 분노하고, 나이만큼 허무해지면서 살아갑니다. 오늘이 어제 같지 않았으니 내일은 또 어디 만큼 달라지려나. 어쩌다, 상식이 저주받는 이 겸손조차 없는 시대가 제가 맞고 있는 노년입니다 제가 60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런가, 자네도 벌써 그 나이가 되었나. 60..

세대간 소통 2024.09.03

누룩 | 마태오 복음 6장 3절

마태오 복음 6장 3절  출근길 현관문을 나서 지하철역까지 20여 분의 거 리를 걸어가 역에 도착하여 전동차가 들어오기를 기 다리고 있는데 앞쪽에 핑크색 가방을 메고 크고 하 얀 리본을 한 젊은 자매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무 언가 불안해 보이는 자매의 행동이 눈에 고정되었 다. 순간 자매가 비실거리다 쓰러지며 몸을 부들부 들 떨었다.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대고 혼비백산했 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의 등을 센 힘으로 와락 밀었다. 자매에게 다가가 그 자매의 머리를 나의 무 릎에 앉히고 손은 그 자매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힘을 주어 어깨를 주물럭거리자, 몇 명의 중년 자매 들이 팔다리를 주물러 주며 도와주었다. 자매의 떨 림이 멎고 딱딱했던 어깨가 부드러워지면서 자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빤히 나를..

세대간 소통 2024.08.10

주말 편지|상해 쉬자후이 성당에서

주말 편지|상해 쉬자후이 성당에서 (클릭):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61742¶ms=page%3D1%26acid%3D837 [주말 편지] 상해 쉬자후이 성당에서 / 유시연 중국 상해 주교좌성당인 쉬자후이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상해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딸의 안내로 몇 해 전에 남편 아오스딩... www.catholictimes.org

세대간 소통 2023.06.13

주말 편지|너는 그것이 나보다 더 소중하냐?

주말 편지|너는 그것이 나보다 더 소중하냐? (클릭);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58657¶ms=page%3D2%26acid%3D837 [주말 편지] 너는 그것이 나보다 더 소중하냐? / 박정순 성경에는 일반적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다. 창조이야기나 부활 등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직접 대화하는 장면들이다. 아담은 죄를 짓고 하느님이 찾으... www.catholictimes.org

세대간 소통 2023.01.10

주말 편지|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주말 편지|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클릭):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57803¶ms=page%3D3%26acid%3D837 [주말 편지]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 노수민 그날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10주기가 되는 기일이었다. 3남 2녀인 우리 5남매는 뭐 그리 형제애가 아주 돈독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싸운... www.catholictimes.org

세대간 소통 202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