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1. 해 질 무렵 날 끌고 가는 발걸음,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 데 저 앞 아파트 창문에 무언가가 푸 드덕거렸다. 꺼멓기도 하고 희끗하기도 한 걸 보니 까치 같았다. 저 새는 왜 저러나 싶은 순간 창문 안 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저 집은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았구나’생각하며 가던 길을 가는 데 그 새는 다시금 창밖으로 나와 푸드덕거렸다. ‘우리 집 창문은 잘 닫고 다녀야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동 시에 혹시 저 새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그곳으로 발걸 음을 옮기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원래 저 집 베란다에서 사는 새일까? 아니면 주인이 맛있는 먹 이를 제공하는 따뜻한 사람일까? 아니면 동화 속에서만 보아오던 박씨를 물어주는 은혜 갚는 새는 아닐지 별별 생각을 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진귀한 상황이라면 얼른 찍어서 동물농장에 보내려고 핸 드폰도 꺼냈다. 하지만 찍지는 않았다. 아주머니께서 빨래를 다 털고 창문을 닫으셨기 때문이다.
2. 해가 지기 전에 가려 했기에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저 앞 화단에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고양이인지 강아지인지 모를 그것은 때로는 규칙적으로 때로는 불규칙 적으로 몸을 떠는 것 같았다. 땅을 파고 있는 걸까? 무언가를 뜯어 먹고 있는 걸까? 또다시 궁금증이 생겨났다. 덩치가 큰 녀석이라면 피해 갔겠지만 보아하니 만만하게 보여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한 손에는 역시나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을 준비를 한 채. 하지만 찍지는 않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 간 순간 그 까만 비닐봉지는 바람에 휙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3. 개와 늑대의 시간. 해가 뉘엿뉘엿하여 어두워질 무렵, 저 언덕 너머의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나타내는 프랑스어 관용구 「L’ heure entre chien et loup」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비단, 개와 늑대 즉 안전함과 위험함만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우리는 때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관심과 외면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안주하며 살아간다. 세 상을 이분법적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으나 때로는 확고하고 뚜렷한 구별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있어야 할 곳과 있지 말아야 할 곳을 잘 구별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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