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히는 존재가 되신 분
김규성 요셉 신부님(인천교회사연구소 부소장)
세상 사람들은 서로 무엇인가를 차지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가능하면 자신 이 많은 것을 먹으려고 합니다. 반대로 먹히기는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 사는 누가 세상에 있는 것을 더 많이 먹는가 하는 경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 습니다.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전쟁 역시 서로 더 많이 먹기 위한 욕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먹으려고 하는 이 세상에 먹히기 위하여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성체와 성혈이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과 피 를 마시는 이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수난 을 당하기 전날 저녁 제자들과 나눈 파스카 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하시며 제자들에게 건네주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먹히는 존 재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세상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먹으려고만 한 것 이 아니라, 먹힘으로써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이후 사도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뜻을 이어받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사도들 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서로 먹으려 하 지 않았고, 서로 먹히는 존재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러한 초대교회가 가진 나 눔의 정신을 통해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많은 지역에 전파되었고, 곳곳에 교회 공동체가 생겨났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성체성사 를 제정하신 참 뜻을 실천한 결과입니다.
이후 교회의 역사를 볼 때 교회가 먹으려고만 할 때와 먹히려고 할 때의 모습이 각 자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교회가 먹히는 존재였을 때 오히려 영성이 건강하게 발전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뜻을 참으로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먹으려고만 하였 을 때는 너무 많이 먹거나 잘못 먹어서 탈이 나거나 영성적 건강을 잃기도 하였습니 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박해로 고통을 당할 때 오히려 신자들의 신앙심은 강해지고, 교우촌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나누는 복음 정신을 실천하였습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엄혹한 시기에 억눌리 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먹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교회는 더욱 돋보였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가진 것을 지키려고만 하였을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이를 돌아볼 때 스스로 먹히는 존재로 나선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 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을 미사 때마다 모시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몸을 내어주시며 먹히 는 존재가 되신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마음에 되새겨야 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도 예 수님께서 몸을 내어주셨듯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는 일을 실천해야 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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