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서 기쁨으로
김민 요한 신부님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성령을 받기 전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복음서들을 보면 의외로 두려움은 제자 들에게 익숙한 감정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도 두 려워하고,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 모습을 보고도 두려 워합니다. 이쯤 되면 두려움이야말로 제자들의 인간적인 약함을 상징하는 단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이라는 이 단어는 꽤 흥미롭습니다. 두 려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포보스(φόβος)’는 성경에서 사용 될 때와 그리스 고전에서 사용될 때 그 의미가 크게 다릅 니다. 예컨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포보스’는 전투 중 닥쳐오는 죽음의 순간 앞에서 느끼는 공포를 뜻합니 다.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두려움’과 정확히 맞아떨어 지는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구약 이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신학자들은 하느님 앞에서, 곧 지극히 거룩하신 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경외와 두려움 을 표현하기 위해 ‘포보스’라는 단어를 선택합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 고전에서 말하는 두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감 정이 존재함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 앞에서 느낀 경외심, 그 리고 그 경외 속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나약함과 미약함에 대한 탄식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 저는 죄인입니 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문을 걸어 잠근 채 방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른 복음서에 나타나는 경외의 두려움보 다는 오히려 그리스 고전에서 묘사되는 두려움에 더 가깝 습니다. 곧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공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자들의 두려움은 예수님의 평화의 인사와 함께, 그리고 당신 고통의 흔적 인 상처를 보여주심으로써 기쁨으로 바뀝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숨을 제자들에게 불어넣으실 때, 그들 의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성령은 바로 이러한 분입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에 게 불어넣어진 하느님의 숨이며, 우리 생명의 근원이자, 두려움 속에 살아가던 제자들의 삶을 기쁨과 그 기쁨을 전하는 사명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의 숨입니다. 사 실 우리는 제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서 부활하셨 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당신의 숨과 성령으로 우리를 채 워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닫아버린 문을 열고 기쁨과 희망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성령 강림 대축일은 바로 이 사실을 다시 기억하 라는 초대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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