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김철이
금슬이 좋기로 소문난 노부부가 있었다. 부부의 살림살이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위해 주며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 남편이 병이 들어 병원에 치료를 시작할 무렵부터 아내를 심하게 구박하기 시작했다. "약 가져와라!" "여기요." "물은?" "여기요." "아니, 이렇게 뜨거운 물로 어떻게 약을 먹으란 말이야?' 남편은 물컵을 엎어 버렸다.
아내가 다시 물을 떠 왔더니, "아니, 그렇다고 찬물을 떠오면 어떡해?' 하면서 물을 또 엎었다. 벗들이 병문안 오자 남편은 아내에게 대접할 차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당신이 하도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저도 지금 정신이 벙벙해서 그만" "아니, 이 여편네가 어디서 말대꾸야!' " "손님들도 계신 데 너무 하시네요." 참다못한 아내는 눈물을 훔치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보다 못한 벗 중 한 이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참으로 몹쓸 사람일세. 저다지도 입속의 혀처럼 병간호하는 아내를 왜 이렇게 못살게 구나!"
그러자,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남편이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모르는 소리 말게, 저 할망구가 마음이 저리도 여려서 내가 세상 떠나고 나면 어떻게 살지 걱정이 돼서…" 남편의 두 눈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얼마 뒤 남편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아내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일상처럼 남편의 유해가 모셔진 봉안당 주변을 서성였다.
한 아내가 남편이 미울 때마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마네킹을 뒷마당에 세워놓고 마네킹 몸의 이곳저곳에 대못을 하나씩 박아나갔다. 불륜을 저지르거나 외도를 저지를 때마다 대못을 망치로 "쾅쾅" 때려 박아댔다. 술에 취한 채 손찌검하고 욕설을 할 때도 박힌 못은 하나둘씩 늘어났다.
한 해 두 해 삶의 연륜이 늘어나 중년에 들어선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을 뒷마당으로 불러냈다. "여보! 여기 이 마네킹 좀 보세요." "아니, 이 흉측한 물건은 뭐란 말이요?." "이것은 못 박힌 마네킹이고 마네킹 몸에 박힌 못의 숫자는 숱한 세월 동안 당신이 말과 행동으로 제 가슴에 대못을 박을 때마다 한둘씩 박았던 것이에요."
아내의 눈물 섞인 말을 들은 남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남편은 아내 몰래 뒷마당으로 나가서 몸 이곳저곳에 숱한 대못이 박힌 마네킹을 쓸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그날 이후부터 남편은 딴사람처럼 변해갔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며 아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을 뒷마당으로 다시금 불러냈다. "여보! 이젠 다 끝났어요. 당신이 고마울 때마다 마네킹에 박힌 못을 하나씩 뺏더니 이젠 남은 게 하나도 없네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이 말했다. "여보! 아직도 멀었소, 못은 빼냈으니 사라졌을지 몰라도 못 자국은 남아 있지 않소? 지금부터 내가 살아갈 삶은 하늘이 내게 주신 덤이니 내 이 덤의 생은 속죄하는 심정으로 살겠소." 아내는 남편을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느 통계에 따르자면 서울에서만 하루에 이백스물다섯 쌍이 결혼하고 서른일곱 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여섯 쌍 중에 한 쌍은 이혼한다는 결론인데 왜 이렇게 이혼율이 높을까, 물론 각자 피치 못할 속내를 지닌 이들도 있겠지만,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너를 위해 나를 내어주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부부가 되는 건 삶의 희로애락을 더불어 나누는 한편 검디검은 머리털이 희디흰 파뿌리가 되도록 한평생 서로 내어주며 동행하겠다는 약속인데도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을 때 비로소 참 행복을 함께 공유한 참 부부라 칭할 수 있으니만큼 백 년을 살되 아픈 날 궂은날 다 제하면 단 삼십 년도 못 사는 인생사 세상 모든 부부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두 영혼 한 육신이 되어 농익고 곰삭힌 참사랑 귀향길 노잣돈으로 썼으면 좋으리라…
'작품 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봄의 끝자락에서 | 시인뉴스 포엠 (0) | 2026.05.07 |
|---|---|
| 낙서장 | 저서_향수 중에서 (0) | 2026.05.03 |
| 멱살잡이도 못 할 거면서 | 저서_향수 중에서 (0) | 2026.04.26 |
| 미약함이 모여서 | 저서_향수 중에서 (0) | 2026.04.19 |
| 독 | 저서_향수 중에서 (0) | 2026.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