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따리

신앙 이야기 | 수사로 부르심을 받아서 행복한 순간들

松竹/김철이 2026. 1. 29. 21:24

수사로 부르심을 받아서 행복한 순간들

 

 

사실 수도성소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제 여동생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살레시오 초등학교를 다닌 제 여동생은, 아파서 구토를 심하게 하는 친구를 사랑으로 돌보고 더러운 오물을 깨끗이 치우는 수녀님의 모습에서 자신도 저런 수녀님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반면, 저는 성당 미사 시간과 겹치는 만화영화를 희생하는 게 너무나 아깝고, 미사에 가는 중간 곳곳에 위치한 오락실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어머니께서 주신 봉헌금을 오락하는데 다 써버린 돌아온 둘째 아들 같은 면이 있었습니다. 간간이 붙잡혀서 혼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유혹을 끊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섭리는 알 수가 없어서 성실한 제 여동생이 아닌, 늘 뭔가 재미를 찾아 방황하는 저를 수도원으로 부르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매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을 축성 생활의 날로 정하여,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의 삶을 기념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저는 제가 수사가 되어서 가장 기쁘고 좋았던 점이 무얼까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수사가 되어 가장 기쁘고 좋았던 점은, 제가 예수회에 입회하지 않았다면 못 만났을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주중 사도직에서 만난 시각장애인 동건(가명)씨. 그분의 결혼과 가정사, 동건씨가 남을 돕기 위해 명동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이야기 등 그분 삶의 일부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동양육시설에서 만난 태욱(가명)이. 태욱이는 특성화 고등학생임에도 자신의 꿈을 찾아 서울에 있는 대학의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자신의 꿈에 대해 저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서은(가명)이. 서은이는 자꾸 연수(가명)와 수연(가명)이를 꾀어서 셋이서 학교를 가지 않고 놀이터를 방황합니다. 예전에 미사를 빼먹고 오락실을 자주 갔던 저로서는 너무나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교육 차원에서 언성을 높이지 않고 잘 타일렀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필리핀에서 회의가 있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회에 입회하지 않았다면 저는 관광지인 세부를 방문하지 따끌로반을 방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태풍 욜란다로 남편을 잃은 부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We are roofless. We are homeless. But we are not hopeless.” (우리는 지붕도 없어요. 집도 없어요. 그러나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 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수도자라는 신분 때문에 미천한 저에게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보여주시고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도자는 그렇게 자신이 만나는 분들을 예수님께로 길 안내하는 셰르파(Serpha) 혹은 길동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그분들께서 애타게 찾으시던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