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김철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라는 속담도 있듯이 세상을 살다 보면 세 치 혀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사단이 종종 일곤 하는데 세끼 밥은 먹지 않아도 살지만, 단 하루도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존재가 말이다. 해서 개인적으로 묵언 수행하는 이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한 노부부가 나들이를 가게 되었는데 한참 걷다가 피곤해진 노파가
“여보 영감!, 나 좀 업어 줄 수 없어요?.”
라고 하니 노인은 업어 주기 싫었지만, 나중에 돌아올 잔소리가 두려워 아내를 업어 주었다. 업혀 가던 노파가 조금 미안했던지
“나, 무겁죠?”
했다. 이 말에 노인은
“그럼, 무겁지!”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노파가
“왜요?”
하고 되묻자, 노인은
“머리는 돌덩이지 얼굴엔 철판을 깔았지. 간은 부었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어?.”
귀가하는 길에 노인이 다리를 다쳤다.
“할멈!, 다리가 몹시 아프니 나 좀 업어 주구려”
노파는 갈 때의 일을 생각해 남편을 업어 주었다. 미안해진 노인이
“나, 무겁지?.”
라고 하면 아내가 자신이 했던 말을 따라 할 것 같았기에
“여보! 나, 가볍지?”
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노파가 혼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럼요!~ 가볍죠. 머리는 텅 비었지, 입은 가벼워 종이쪽이지 허파엔 바람만 잔뜩 찼으니 어찌 가볍지 않겠우.”
옛날에 박 아무개라는 백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두 양반이 그에게 고기를 사러 왔다. 그중 한 양반은 평소 습관대로
“이놈, 아무개야! 고기 한 근만 끊어다오.”
라고 하대하며 말했다. 아무개는
“예! 나리 그리합죠.”
라며 고기를 한 근을 내주었다. 또 다른 양반은
“박 서방!, 내게도 고기 한 근만 끊어주게나”
라며 아무개의 신분에 최대한 정중한 말투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아무개가 두 양반에게 끊어준 고기는 언뜻 봐도 먼저 끊어준 양반의 고기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똑같은 한 근이라고 했는데 너무 많은 차이가 나자 앞선 양반이 화가 나서 따졌다.
“야, 이놈아!, 다 같은 한 근인데 이 양반의 고기는 많고 내 고기는 왜 이다지도 적으냐?”
그러자 아무개는 당연하다는 듯
“나리의 고기는 욕심 많고 인심 야박한 아무개가 끊은 것이고, 저 나리의 고기는 선하고 인심이 후한 박 서방이 끊은 것이라 차이가 나나 봅니다.”
길을 가던 한 선비가 두 마리의 소로, 밭을 갈고 있던 농부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농부는 곧장 밭 가장자리로 나와 선비의 귓전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힘은 검정소가 더 세고 꾀를 부리지 않고 일 잘하는 건 누런 소요.”
“그런 말을 뭘 그리 비밀스레 하시오.”
“말 못 하는 짐승일지라도 나쁜 말을 듣게 해서는 안 됩니다.”
라고 하였는데, 농부에게 이 말을 들었던 선비가 바로 황희정승이었다. 그 후 황희정승은 평생 남을 헐뜯는 말은 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빚진 어떤 이가 빚 독촉을 받게 되자 하는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유일한 재산인 암퇘지를 팔려고 장에 몰고 나가 내놓았다. 그러자 돼지를 사려는 이가 다가와서 새끼를 잘 낳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무리 돼지를 키웠던 주인이라도 이 일만은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돼지를 팔기 위해선 어떻게 하든지 손님을 만족시켜야 했다.
“그렇고 말고요. 손님! 이놈은 동네 결혼식 때면 암놈만 낳고 이웃 환갑에는 수놈만 낳습죠 네!”
사려던 이가 놀라 설마 그럴 리가 의구심을 품은 듯한 표정을 지으니 빚을 받으러 와 곁에 앉았던 빚쟁이가 한술 더 떠서
“그뿐인 줄 아십니까?. 이 돼지는 동네 제삿날이면 염소 새끼까지도 낳는다니까요.”
옛날 어느 나라의 왕이 두 신하에게 한 가지씩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과 가장 선한 것을 찾아서 가져오라는 명이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두 신하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닌 후 마침내 상자 하나씩을 들고 돌아왔다. 왕은 먼저 가장 선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은 신하의 상자를 열어보니 상자 속에는 다름 아닌 잘려 나간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다.
이어서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을 받은 신하의 상자를 열어보니 두 번째 상자 속에도 마찬가지로 잘려 나간 사람의 혀가 들어 있었다. 왕 앞에서 두 신하는 자기 대변을 하기 시작했고 사람의 혀야말로 가장 선한 것, 또는 가장 악한 것이라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두 신하의 논쟁을 끝까지 다 들어본 왕은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도 사람의 혀요, 가장 선한 것도 역시 사람의 혀라는 결론을 내렸다.
도둑질은 아무리 해도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돌려 줄 수 있지만, 타인을 중상 모략한 말은 마음을 천만번 고쳐먹어도 되돌려 줄 수가 없다. 선한 말을 하면 선한 혀가 되고 악한 말을 하면 악한 혀가 되듯 우리가 한번 내뱉은 말은 영영 회수할 길이 없으니 세 치 혀 놀리기를 도 닦듯 해야겠다. 때로는 한마디 말이 그 어떤 치료 약보다 더 큰 효험을 발휘해 생명을 구하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예사롭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의 말이 날이 선 비수가 되어 타인의 마음을 도려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