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김철이
가을걷이란 농부들이 일년내내 고생하며 농사지은 곡식을 거두어들인다는 개념만이 아니라 인생살이 전반에 걸쳐 해당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의 의견을 조정하여 사회를 유지, 보존시키는 일을 맡아서 하는 정치인은 민생정치에 온 정성을 쏟아야 한다. 사업을 계획하고 관리하여 운영하는 본분을 지닌 사업가는 그 본분에 걸맞게 회사가 나날이 번창해 나아가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직에 몸담은 공직자라면 청렴한 공직 생활의 가을걷이에 풍작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주관하는 여주인 역할을 해내야 하는 가정주부라면 가사에 충실하고 가족사에 최선을 다했는가에 대한 가을걷이가 필수로 이루어져야 세상 뭇 인생살이에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6.25 한국 전쟁이 막 끝나가던 1955년 가을이었다. 미국의 오리건주 유케네 라는 마을 회관에는 종교 영화를 상영한다는 광고가 붙었다. 마을 사람들은 즐겁게 인사를 나누며 영화를 관람했다. 그런데 그 영화는 종교 영화이기보단 선전포고도 없이 발발했던 한국 사변이 낳은 고아들에 얽힌 영화였다. 영화의 끝은 처참하게 끝나면서 이들을 보살펴 줄 손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영화가 끝나자 한 농부 부부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여보! 우리가 아무리 가난한 농부라지만, 그 아이들의 아픔이 타인의 몫이 아닌 듯 마음이 저리고 아파서 잊을 수 없구려. 여보, 우리가 그 아이들을 위해 뭘 좀 도와줄 순 없겠소?"
농부 부부는 형편이 넉넉지 못해 마음은 마구 요동쳤지만, 실제로 고아들을 도와주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 영화를 잊으려 해도 그 영화는 잊히질 않았다. 눈앞에선 타국의 전쟁고아들이 눈에 아른거리고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점점 크게 우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내면 소리에 정직하기로 했고 자신들의 생명과 같은 땅을 팔아 직접 한국을 방문했었다. 몸소 와 보니 6.25 전쟁 직후 한국의 실상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했었다. 영화에서 보던 대로 전쟁고아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농부 부부는 전쟁 혼혈 고아 여덟 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실이 신문 기사로 세상에 알려지자 여러 봉사단체에서 이들을 돕겠다는 손길이 이어졌다.
그 후 이 농부 부부는 전쟁으로 인해 고통 속에 있는 한국 고아 여덟 명을 더 입양하여 평생을 헌신하는 한편 전쟁고아들을 돕는 기관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1955년 10월에 미국인 부부 해리 홀트와 버사 메리언 홀트가 입양을 알선하고 소외 아동·청소년·비혼모·장애인·저소득계층·다문화가정 및 지역사회 등에 전문적인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할 목적으로 홀트아동복지회를 설립했다. 이러한 사실만 봐도 홀트씨 부부는 농부의 신분에 맞게 곡식만을 가을걷이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한 인간으로서의 훌륭한 가을걷이를 함으로 인생 곡간이 늘 그득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늘진 곳에서 험하게 살았던 주먹세계 대부가 있었다. 주먹으로 뒷골목을 평정하였고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갈 걱정 없을 만큼의 힘도 지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그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이렇게 뒷골목의 대부로 살기보다는 더욱더 보람 있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은 강한 욕구가 용솟음쳤다.
그는 우선 공자의 논어(論語)를 새겨읽었다. 공자님의 말씀은 어느 하나 그른 것이 없었고 어느 하나 명언이 아닌 것이 없었다. 아울러 공자님의 말씀을 한 가지 한 가지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애써 노력했다.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만족스러움이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걷다 폐지를 줍는 노파를 발견하고 폐지 수레를 잠시 밀어주다 보니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뿌듯함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오더라는 것이다. 인생사 보람은 큰 곳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곳에서 찾는 것임을 깨달은 그는 많은 재산을 소외계층에 되돌려주고 노년의 가을걷이를 위해 폐지 수집소를 차려 덜 가진 이들을 위해 봉사의 길을 걸었다.
어느 날 한 아버지와 아들이 말을 타고 숲속의 길을 따로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몇십 리를 간 다음에 드디어 부자는 반갑게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부둥켜안고 기뻐했다. 그때 아들이 아버지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우리 대자연의 드높은 은혜와 보살핌이 참 감사하지요."
이 말에 아버지는 궁금해서 까닭을 물었다.
아들이 하는 말,
"제가 지금 아버지를 찾으러 오는 도중에, 나무뿌리에 걸려 말이 세 차례나 쓰러졌어요. 그런데 저는 한 군데도 다친 데가 없어요. 얼마나 대자연 앞에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그래, 참 감사할 일이구나. 그리고 보니 나도 감사해야겠구나. 내가 너를 찾아오는 도중에 내 말은 한 번도 나무뿌리에 걸려서 쓰러진 적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대자연의 은혜가 참 감사하구나."
그 부자는 모습도 시야에 들지 않은 대자연의 섭리에 감사하며 또 다른 인생 가을걷이 대풍을 위해 걸어갔을 것이다.
나무는 어떠한 모양으로든 반드시 꽃을 피운다. 그 꽃이 화려하든 향기도 없이 보잘것없든 크든 작든 무관하게 그래서 목지필화(木芝必花)라는 교훈이 생겨난 것이다. 무화과는 꽃이 없는 나무라는 뜻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속으로 꽃을 피우고 있음이다. 아울러 한번 핀 꽃은 어떤 형식과 형태로든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세상 인간사도 마찬가지 나름 평생을 살며 인생 텃밭에 삶의 씨를 파종하고 해마다 가을이면 거두어들여 인생 곡간에 쌓아두었다 세상 소풍 마치는 날 가을걷이했던 삶의 알곡 허리춤에 차고 고향길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