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형전 루카 신부님(꾸르실료 담당)
여러분 자녀나 손주가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학원 선생 님께 맞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말을 함부로 하거나 행동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조금 틀려서 맞았다면요? 예전에는 스승님한테 맞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요즘 부모님은 자녀를 끔찍이 아끼 기 때문에 펄쩍 뛰면서 화를 내는 분이 많을 겁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 수님도 아버지가 있으시거든요. 그것도 그냥 아버지가 아 니라 하느님 아버지십니다. 그런데 그 아드님이 수많은 군 중 앞에서 발가벗겨지고, 욕설과 침 뱉음을 당하고, 납덩 이가 달린 채찍으로 수도 없이 맞은 후에 십자가에 못 박 혀서 죽음까지 당하신 겁니다. 여느 아버지도 자기 자식이 이런 꼴을 당하면 가만히 있지 못할 텐데, 세상에서 가장 높으신 아버지라면 온 세상을 다 쓸어버리셨어야 정상이 아닐까요?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집니다. 예수님을 때리고 욕하고, 옷 벗기고, 모욕하고 죽인 결과로 온 세상 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괄시 하고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는데 용서라뇨, 화해라뇨, 구 원이라뇨. 이런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사실 하느님께서도 구약 시대에는 때리고 무섭게 겁주 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고 희 년을 지키지 않으면서 하느님 속을 썩이던 이스라엘 백성 들이 계약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하다가 혼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하느님께서 다른 방법을 선택하셨는데, 그 방법은 당신 백성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통 해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게 하신 겁니다. 그 안에 담긴 사랑을 느끼고 하느님께 되돌아오기를 바라신 것이죠. 마 치 창녀에게 빠져 아버지 재산을 다 들어먹은 아들이 잘 못을 깨닫고 되돌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그 아들은 뭡니까? 명색이 하느님이신데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수난과 죽음을 감당하셔야 합니까? 너무 억울 하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께 서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이렇게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 셨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들 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이심을 고백함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들은 아 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겸손과 순명을 선택하셔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고, 이에 하느님께서도 그 아드님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자신의 승 리와 영광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자신 을 낮추고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노 력할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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