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하느님은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사랑합시다! | 손은석 마르코 신부님(노인사목 전담)

松竹/김철이 2025. 4. 11. 10:15

하느님은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사랑합시다!

 

                                                                                   손은석 마르코 신부님(노인사목 전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많은 업적과 능 력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하 느님께서는 오히려 우리 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 신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 게 됩니다. 눈물 속에 감 추어진 하느님의 신성한 의지에 순종하면 자신의 가능성을 훌쩍 뛰어넘는 인간으로 치솟을 수 있게 됩 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루카복음이 강조하는 생명 죽음-생명의 순환이며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 우리를 안내하는 방향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즈카르야서의 예언처럼(9,9)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의 임금으로 딸 시온성, 예 루살렘에 환호를 받으며 입성하십니다. 이사야서 52,7-8절에 따르면 시온성에 돌아오는 임금은 하느님 이십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겸 손한 예언의 임금이라는 것은 그분을 통해 하느님이 오 시거나 그분이 하느님이시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극적 이고 놀라운 주장을 복음서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제2독서 필리피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분 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 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 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 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 께 주셨습니다”(2,6-9). 화려한 입성 길의 끝은 수 난 길의 시작이었지만, 예수님이 수난에 순종하신 이 유는 수난 길의 끝에 참된 승리와 평화라는 하느님의 더 많은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는 예수님 안에서 세상에 오셨고 고통 안에서 시온성 을 회복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방식인 ‘동정’을 뜻하는 ‘숨파테오συµπαθέω’는 ‘쉰(함께)’과 ‘파스코 (고통받다)’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함께 고통받는 것 이 동정이듯,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고통의 순간을 단 순히 견디어 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난의 순간을 진 정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구약의 예언은 예수님께 이어지고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 교회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도 화려한 모습 뒤에 이어진 수난의 순간이 다가온다면 우리는 그 길을 단 순히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랑하 여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C.S 루이스)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아 지금 우리가 겪어야 할 수난이 있다면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소리치시고 계십니 다. 고통 속에 부르짖는 하느님의 목소리, 그 기억의 문을 열어젖히기 위해 모든 오감을 일깨울 수난의 순 간을 버티지 말고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