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전삼용 요셉 신부님 | 거짓말의 결과 | 사순 제1주간 금요일, 2025 03 14

松竹/김철이 2025. 3. 14. 07:00

[거짓말의 결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5 03 14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QgLFASqr6U0

 

 

 

2025년 다해 사순 제1주간 금요일 – 거짓말의 결과 

먼저 시간이 좀 부족할 것 같아서, 죄송스럽지만, 내일 토요일 복음 묵상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요즘 한국 자살률이 더 증가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하루에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특히 연예인들의 자살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연예인들은 대중의 관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 주요 요인이 한국 교육에서 감정의 아픔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에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힘든 감정을 치유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원인을 외적인 것에서 찾게 만드는 문화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이란 겉으로 보이는 의로움입니다. 무화과 잎으로 자기 몸을 가리며 자신들이 의롭다 스스로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을 판단하면서 자신들이 의롭다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겉으로 화를 내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요, 속으로 음란한 마음을 품는 것도 간음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속은 보이지 않는다고 겉으로만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았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버리라는 뜻입니다. 이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함’입니다. 거짓을 모르는 솔직함, 이것이 자기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기 안에 있는 욕망 때문이고 그 욕망을 자아내는 자아 때문임을 보게 합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는 진왕(秦王) 영정(嬴政)이었습니다. 훗날 역사에서 그를 진시황(秦始皇)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기원전 221년에 전국 시대를 평정하고 천하를 손에 넣으면서 “분열된 중국을 하나로 묶어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큰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위업을 성취한 뒤에도 진시황은 더 큰 욕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로 죽지 않는 존재, 곧 불사(不死)가 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룩한 권세가 영원하기를 바랐고, 늙고 죽는 일은 “하찮은 범인(凡人)이나 겪는 것”이라고 여기며 “왕 중의 왕인 내가 왜 죽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는 “혹자가 ‘바닷가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머물며 불사약을 지닌다.’ 하였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진시황이 연금술사나 방사(方士)를 불러들이며 “과연 누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줄 것인가?” 하고 재물을 아끼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불사의 꿈이 좌절될 때마다 진시황은 자신을 비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던 이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분서갱유(焚書坑儒)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유학 경전을 비롯한 책들을 불태우고, 황제의 뜻을 거스르거나 비판하던 학자 수백 명을 생매장한 일로, 절대 권위와 영생의 꿈을 위협하는 자들을 제거하려 했던 극단적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시황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편집증적이 되어 곳곳에서 암살자의 위협을 감지하고, 행차 동선을 비밀스럽게 바꾸며 미신과 처방에 의존했습니다. 연금술사들이 조제한 수은(머큐리) 함유 물질을 약으로 먹었다는 설도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되어 병을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기원전 210년, 전국을 순행하던 중 병을 얻어 쓰러져 당시 나이 약 마흔아홉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늙음과 죽음의 법칙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교만이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의 씨앗이었는데, 이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는 부끄럽고 두려워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사실 그 근본 원인은 ‘뱀’에게 있었으나, 자신이 부끄러운 이유가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 때문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행복하지 않은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아 헤매다가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영원한 행복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 안에 진정한 고통의 원인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밖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방법이 ‘거짓말’입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은 애벌레가 참 행복을 찾아 나아가는 내용입니다. 이 책에서 애벌레 기둥의 맨 위까지 오른 것들은 그곳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것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게 숨기려고 합니다. 그들을 자신들 불안의 원인을 자신들의 행복이 경쟁에 이겨 제일 높은 자리에 앉게 한 자기 안의 적에 두지 않고 외부의 평가에 둡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히 그 불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반대 사례입니다. 미국의 작가이자 가톨릭 신부였던 브렌난 매닝은 한때 알코올 중독과 세속적 인정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사제로 보이려 했지만, 실제로는 중독으로 인해 내적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며 매닝은 깊은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이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도 정직하지 않은 삶임을 통렬히 깨닫게 됩니다. 이 순간 그는 마치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한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너의 완벽함이나 성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
매닝은 이 순간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솔직한 자기 고백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참된 자유와 내적 평화를 경험했고, 『아바의 자녀』와 같은 책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불완전한 걸인으로서 하느님의 사랑 앞에 정직하게 서는 삶”이라고 묘사하며,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매닝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완벽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연약하고 상처 입은 걸인 같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내면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정확히 아픈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 병을 고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피가 탁해져서 피부에 뭐가 나는데 피부약만 바르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솔직하게 참 행복을 찾는 이들은 성인이 됩니다. 깨끗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이런 자기 모습을 벌거벗고 솔직하게 주님께 보여드리는 시간입니다. 자기 고통의 원인과 자아를 발견하는 광야의 시간을 가톨릭적 ‘명상’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명상을 하며 자아의 욕망이 고통의 원인임을 발견하지 못하면 겉돌고 맙니다. 광야의 예수가 곧 명상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