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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내가 받는 은총의 수준은 내가 하는 사랑의 수준과 같다 , 2024 12 18

松竹/김철이 2024. 12. 18. 07:00

[내가 받는 은총의 수준은 내가 하는 사랑의 수준과 같다 ]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4 12 18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5g6Bz8j3t4c

 

 

 

2024년 다해 12월 18일 수요일 – 내가 받는 은총의 수준은 내가 하는 사랑의 수준과 같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약혼자인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리아는 버림받은 여자가 되고 요셉은 임신시켜놓고 약혼자를 버린 몹쓸 인간으로 낙인찍힙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이 결단의 순간에서 요셉은 자신을 배신한 마리아를 위해 자신이 죽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의로움입니다. 그리고 그 의로움이 은총을 얻어냅니다. 요셉은 성모님의 남편이 되고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사랑만이 은총을 얻어냅니다. 인간의 사랑을 지향하는 아기는 인간의 사랑을 받지만, 늑대 정도의 사랑을 지향하는 늑대 새끼는 늑대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랑을 받습니다. 사랑이 은총입니다. 요셉은 하늘의 은총을 원했던 것이고 하늘에 합당한 사람임을 증명해 내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죄인임을 자처했듯이, 자신도 자기를 배신한 마리아를 위해 죄인임을 자처한 것입니다. 은총은 내가 지향하는 사랑의 크기만큼 주어지는 것입니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중 하나인 ‘면죄부 판매원 이야기(The Pardoner’s Tale)’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이 왜 은총을 잃는지 잘 표현됩니다. 
이 이야기는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방탕한 삶을 살던 세 젊은이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원인을 ‘죽음’의 탓으로 돌리며 비난합니다. 이들은 오만하게도 죽음을 찾아내 죽이겠다고 결심합니다. 
길을 가던 중 이들은 한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노인은 그들에게 존중과 축복을 요청하지만, 이들은 그를 조롱하며 약하고 초라하다고 비웃습니다. 또한 죽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무례하게 묻습니다. 노인은 상징적으로 한 나무를 가리키며 거기서 죽음을 찾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 나무 아래서 죽음 대신 이들은 많은 금화를 발견합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이들은 처음의 목적을 잊고 그 금화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기심은 서로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며, 각자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려 합니다.
가장 어린 이는 도시로 가서 음식을 사 오면서 두 사람을 독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반면 나머지 두 사람은 돌아온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젊은이가 돌아오자 두 사람은 그를 죽입니다. 이후 두 사람은 축하하며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고 결국 모두 죽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죽음을 찾으러 갔다가 서로의 탐욕과 배신으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타인을 가혹하게 판단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세 젊은이는 탐욕과 오만으로 서로를 적으로 보았고, 그 결과 행복과 구원의 기회를 모두 잃었습니다. 어떤 형이 큰 공을 세워 살인죄로 갇힌 동생을 위해 사면권을 받아 감옥을 찾은 형과 같습니다. 형은 동생을 떠보기 위해 풀려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동생은 자기를 신고한 사람과 판사를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형은 사면권을 동생에게 줄 수 없음을 깨닫고 사면권을 찢어버립니다. 
은총은 더 높은 수준의 사랑의 단계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주어집니다. 낮은 단계의 사랑 수준에 있는 사람은 그만큼 적은 은총이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총이나 칼이 주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은총을 주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가 잘못된 사회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큰 은총을 받는 예언을 받은 사람 중 하나는 유다입니다. 유다는 요셉이 막내 베냐민을 가둔다고 하자 동생 대신 자신이 갇히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유다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나리라고 예언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당신이 그 죄를 다 뒤집어쓰십니다.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서 받는 은총을 받으려면 타인의 잘못을 나의 것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쉽지 않습니다. 투르의 성 마르티노는 서기 316년, 현재의 헝가리 지역에서 태어나 로마 군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춥고 가난한 거지에게 자기 외투의 반을 찢어서 주었습니다. 그날 밤, 마르티노는 꿈속에서 그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마르틴이 거지에게 준 외투의 절반을 입고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곁에 있는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틴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입혀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마르틴은 경외심과 새롭게 다가온 믿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거지에게 베푼 친절이 곧 그리스도께 드린 사랑의 행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결국 투르의 주교가 되었고 성인이 되었습니다. 은총은 바로 누군가의 헐벗음을 자기 탓임을 느끼고 자기 옷을 그에게 입혀주는 일과 같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는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도 막상 내가 피해 볼 상황이 되면 나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의 죄를 벗겨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자신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작은 덮음을 실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연습이 필수입니다. 그렇게 타인의 잘못을 덮어주는 일로 나에게 크게 잘못한 이를 덮어준다면 요셉처럼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