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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213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12. 13. 07:54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213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j_OdytxOktA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이처럼 많은 시대가 더 있었을까 싶은 우리지만 연일 우리를 놀라게 하는 말이 되지 않는 사건에 여러 번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되는 요즘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도 ‘양심’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것은 어떤 모습이나 형태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임을 모두가 알기에 꼭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죄’가 나쁜 것임을 알고, ‘선’의 유익함을 내세가 아니라도 모두가 배워 알고 또 그리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두가 처음부터 느끼고 아는 바를 무너뜨리는 일들은 왜 생기는 걸까요? 그 중심에는 ‘자신’에 대한 태도가 놓여 있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주님이 보여주지 않으셨기 때문이고, 오히려 오해받고 곡해되기 쉬운 것이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차라리 우리에겐 세례자 요한이 우리가 기다리던 구세주, 메시아의 모습에 합당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채 살며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요구를 하기에도 훨씬 높은 차원으로 보이는 그의 생활과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두 모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어느 한쪽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자신들이 본받기에 너무 차원이 높고 거룩한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아무런 특징도 특별함도 없는 사람이었고 성전은 몇몇 의인들의 차지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기에 누구도 하느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 세상이었습니다. 오로지 사람들은 ‘자신’ 하나를 지키기 위해 살아야 했습니다.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느님의 뜻은 너무 버겁고, 예수님의 삶은 너무 초라하다 여기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하느님의 뜻을 만들고 자신들만 하느님 안에 살거나 아니면 모두를 그 틀에서 쫓아내어 허울뿐인 하느님 백성, 구원의 선민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오셔도 알아보지 못한 것은 고사하고 모범으로 보내진 이도 늘 그랬듯 미워하고 없앨 궁리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은 그래서 당신의 모든 것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그분의 먹을 자리와 술 자리에 함께 한 이들을 구원의 대상이 되게 하셨기에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사람들처럼 이리 저리 진리를 피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 ‘일들’ 때문에 진리를 결코 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대림시기의 중심은 그 지혜가 이룬 ‘일들’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18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