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124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lZjoKvLbAho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한 해의 마지막 주간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주간의 첫날 우리가 ‘주일’이라고 부르는 주님의 마지막 부활절의 이름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이 긴 제목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설명해줍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세상을 사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모든 것이 정해진다는 뜻입니다. 그 단순함이 원리고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과거의 역사책이나 법률서에 기록되어 있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또 앞으로도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며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위인이나 스승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제자의 삶이 아니라 스승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삽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의 백성이 아닌 세상의 지도자 빌라도 앞에서 자기 백성에게서 끌려나온 임금으로 자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이 질문에 담아 전합니다. 지금 백성들이 죽여달라고 데려온 당신이 그들의 임금이냐라는 것이 질문의 내용입니다. 이 표현이 빌라도에게는 ‘반역’의 의미가 될 수도 있겠으나, 이 상황은 예수님이 진짜 왕이냐 아니냐를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이 상황이 황당하기에 그는 묻습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주님이 임금이라면 백성은 왜 이 임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거나 따르려 하지 않았을까요? 이방인에게 드러나는 이스라엘의 실체는 십자가에 다다르기도 전에 이렇게 드러납니다. 빌라도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예수님께 풀어 전합니다.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을 고백하고, 그분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안다고 말하는 하느님의 백성은 언제나 고집스런 반항아의 모습을 버리지 못했고, 그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자신들을 위한 일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다시 되찾으려는 하느님의 노력은 절망적인 상황에도 당신 아들을 보내시는 것으로 세상에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고 듣고 따를 수 있는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을 마구간에 태어나게 했고, 차별했고, 무시했으며 결국 십자가에 본보기로 무죄한 이를 죽임으로써 사람에게 희망을 잘랐고 하느님께 자신들의 부끄러운 위선을 온통 들켜버렸습니다. 그것도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 외아들을 죽임으로써 말입니다. 빌라도, 하느님을 모르고 믿지도 않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피로 물들였던 이 통치자 앞에 드러난 사실입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임금이라면 이 상황이 가능했을까? 예수님은 빌라도의 질문을 돌려주십니다. 그런 이야기는 “네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는 말이면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은 임금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 자체로 태어나셨고, 사셨으며 지금 말도 안되는 죽음의 상황 앞에 계십니다. 이것으로 진리가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세상이 진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이방인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진리를 어떻게 대하며 사는지 보여주는 이들 속에 예수님은 끝까지 당신의 본분을 지키려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느님을 임금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진짜 우리 임금이심을 우리의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마저 그분을 빌라도와 같은 이방인들 보기에 자신의 임금을 무시하고 죽이려는 모습으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0:00 오늘의 복음
1:40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