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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이것이 빠진 묵상은 기도가 될 수 없다,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4 11 13

松竹/김철이 2024. 11. 13. 07:00

[이것이 빠진 묵상은 기도가 될 수 없다]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4 11 13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SokU6XkBYFU

 

 

 


2024년 나해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 이것이 빠진 묵상은 기도가 될 수 없다.

2014년 5월 15일에 방영된 EBS ‘리얼체험 땀: 링 위에서 세상을 배우다’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방황하던 한 고교생 영대(19)가 있습니다. 영대가 일정 시간 권투를 배우며 땀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영대는 ‘자신은 방황하는 중이고, 그런 자신을 붙잡아줄 강한 스승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영대의 스승은 박현성 관장(47)입니다. 과거 자기 모습과 꼭 닮은 모습인 영대를 보고 제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둘의 첫 만남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영대는 박현성 관장 앞에서 의자까지 들며 위협합니다. 그러나 박 관장은 영대의 실력이 형편없음을 링 위에서 보여줍니다. 영대는 갈등합니다. 권투를 계속 배울지. 그리고 배우기로 합니다. 
이제 헤어질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박 관장은 다시 마지막 권투 스파링하자고 합니다. 박 관장은 과거 권투 유망주였지만 올림픽 문턱에서 두 번이나 좌절한 후 폭력조직에 가담하고, 삶을 비관해 분신자살까지 시도하면서 인생에 기권을 선언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온몸에는 화상의 흔적이 있습니다. 박 관장은 자기 다리를 만지게 합니다. 딱딱하게 굳어 굽혀지지도 않는 몸으로 자신을 가르친 것입니다. 
마지막 스파링에서는 영대가 자신을 한 번도 때리지 못하자 양손을 등 뒤로 하고 한 대 강하게 맞아줍니다. 방송 PD가 묻습니다. 
“사부님은 왜 헤어지기 전에 대결하자고 하셨을까요?”
“점점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라고 그런 거 아닐까요? 저한테…. 느껴보라고. 딱 하나 정확한 게 하나 있어요. 생각하는 게 바뀌었어요.”
“어떻게요?”
“‘난 안 되겠다.’ 이런 생각 말고, 이젠 ‘내가 안 돼도, 한다.’라고 믿어보자.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고 믿어보자.’ 이런 식으로.”

2010년 7월 대구지방법원 모 부장판사가 평소 판사 생활에 심한 회의를 느끼며 힘들어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판사는 막말로 얘기하면 세상 사람들이 토하거나 배설한 물건들을 치우는 쓰레기 청소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자괴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습니다. “판사는 의심하는 직업이며, 심지어 아내와 부모님 말씀마저 의심하게 한다”라며 “참으로 한심하고 끔찍한 직업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글을 자신이 다니는 교회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그도 분명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의 기도에서 무엇이 빠져있었을까요? 지향입니다. 방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십니다. 그 열 명 중에 유일한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치유해 주신 것이 곧 그 사람들의 구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돌아와 감사와 영광과 찬미를 드렸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묵상기도가 감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영대는 자기를 위해 희생하는 스승을 묵상합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자신이 관장의 얼굴을 때릴 수 있을 수준으로 향상되었음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하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감사하게 되고 새로운 삶으로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소뇌를 다쳐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이사와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을 보면서 그녀는 늘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말하는 대로 써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왼손에 토막연필을 쥐고 받아 적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느님이~”
그녀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씀에 울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공평해 보이지 않아요! 내겐 아무것도 없어요!”
하느님은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써라!’ 하셨고, 그녀와의 반복되는 공방전 속에 결국 하느님이 승리하셨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공평하신 하느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느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렇게 ‘나’라는 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사로 한국 복음성가 작사 대상을 수상하고 그녀의 책도 기독교 저서 최우수 서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묵상입니다. 묵상에 십자가가 빠지고, 그 때문에 감사와 찬미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기도가 아닌 시간 낭비를 한 것입니다.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