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1106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7zijVQ3G6yM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일에 주님이 들려주시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명을 배운 우리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모든 것의 근본임을 알았지만 그 계명은 예수님이 처음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나 그러나 그렇게 사는 사람이 없었기에 결국 하느님이 그 자리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런 자신들에게 ‘심판’을 말하며 하느님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은 늘 그렇듯 우리와 달랐고 예수님은 스스로 이 계명의 모범이 우리에게 되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라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누구든지 하느님을 말하면서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말하고 신앙을 말하면서 하느님이 말씀하신 이 사랑, 자신만큼 누군가를 소중하여 여기고 자신의 생명마저 아낌 없이 주는 ‘십자가’를 지고 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을 주님은 이야기하십니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에서 시몬처럼 당신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자신의 십자가, 곧 우리가 우리를 희생해도 좋을 사랑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분의 삶의 뒤를 함께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로 생각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자신을 버리고 그 모든 것을 위해 살아가는 그 끝의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자신이 됩니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신앙의 지극한 끝에는 ‘심지어 자기 목숨’이라고 말하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그 한계치가 놓여져 있습니다. 사람을 다시 찾으려하시는 하느님께서 이미 망가져버린 사람을 고쳐놓는 계명으로 이웃사랑에서 ‘자기 자신처럼’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사랑의 가치를 모를 리 없는 사람에게 가장 큰 방해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신 십자가로 그 사랑의 큰 한계를 넘어선 모범이 되십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신앙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의 말은 대게 틀린 말입니다. 그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싫음’입니다. 자신을 넘어서고 버리는 것은 가장 ‘싫은’ 일일테니 말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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