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서울대교구 보좌주교)

松竹/김철이 2024. 10. 5. 11:30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오늘 말씀의 전례는 혼인의 신성함을 언급하는 내용입 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염려가 됐습니다. 혼인 에 실패하였고 도무지 현실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혹시라도 소외감을 느끼게 하 거나, 이해심이 부족한 종교가 원망스럽다며 하느님과 교 회를 떠나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말입니 다. 그러나 말씀의 취지는 더 깊은 데 있습니다. 오늘 복 음에서 사람을 시험하려고 질문을 던지는 바리사이파 사 람들은 생명의 본질을 일깨워주시는 예수님의 태도와 대 조를 이룹니다.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라는 계명을 남긴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버림받아 혼자 된 여자가 생 존을 위해 다른 남자와 생활을 하게 됐을 때, 전남편이 간 통으로 고발하면 죽게 되던 폐해에서 이들의 생명을 보호 하고자 내린 조치였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모세는 완고 한 인간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사랑 자체이 신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인간이 갈라놓으 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소중한 존재인 배우자를 함 부로 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혼인이라는 제도에 국한해서 듣기보다는 더욱 본질적인 부분을 염두에 두고 들었으면 합니다. 우리 는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다는 점(히브 2,11 참조)에서 출발하자 는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아예 언어도 생각도 배우 지 못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야기가 인간의 그런 특성을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삼라만상 가운데서도 마주할 상 대가 없는 아담은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서는 그의 몸에서 갈비뼈를 꺼내어 하와를 창조하셨습니 다. 동화적인 요소보다 이 이야기의 본질에 몰두해 본다면,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인간이 한 분에게서 나온 존 재로서 주님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인은 그런 일치를 몸소 체험하는 현장이고 그 안에서 하 느님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태초 부터 계획하신 구체적인 인간 생명체(자녀)의 탄생을 바로 혼 인을 통해서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혹여 자녀가 없 어도 혼인에서 일치를 체험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혼인에 실패했거나 사별한 분, 미혼으로 생을 마감한 분, 성직자와 수도자 등을 가리지 않으며, 우리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모 든 인간은 누구나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대등한 존재로 여기며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삶 안에서 그 실천을 넓혀가야 할 것 입니다. 상대방을 소외시키거나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무시하지도, 증오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맘에 드는 사람이든 불편한 사람이든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은 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이라 여기며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나를 참아주시는 우리 모두 의 뿌리인 하느님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