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한방? 순교도 한방?
정동수 안드레아 신부님 (용안성당)
1.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 서, 순교자들은 성인품에 오를 때 기적 심사에서 면 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 니다. 인생 한방이라는 생 각을 했습니다.
“이거다! 평생 신나게 살다 가, 죽을 때 딱 한 번 눈 감으면 되는겨!” 어른이 되 어, 인생은 한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순교 성인들의 삶과 신앙을 공부하면서, 순교도 한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 자기 순교할 수는 없습니다. 순교의 삶을 살아온 사람만이 순교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살아 온 사람, 하느님을 위해 살아온 사람만이 순교할 수 있습니다.(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동료들을 위 해 바닷길을 조사하다가 붙잡혔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자신의 온 삶을 조선교회 재건을 위해 바쳤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기회가 왔을 때, 주저 없이 목숨을 바칠 수 있 었습니다.)
2. 나라를 뒤흔드는 뉴스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 을 했습니다. 이 시대의 순교란 책임지는 것이 아 닐까요. 병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덮 으려다가 이 난리가 났습니다. 뇌물 수수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다가 온 나라가 시끄럽게 되었습니 다. 책임지지 않는 이유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 문입니다. 명예를 잃을 수도 있고, 경제적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책임지는 삶을 사는 자만이, 순교할 수 있습니다. 제 삶을 돌아봅니다. 멋지게 책임지는 선배 신부님 들의 모범을 간혹 보아왔건만, 본받기가 얼마나 어 려운지요. 오히려 권한은 누리되 책임은 타인에게 지우는 처세술은 얼마나 쉽게 배워지던지요. 하여 교구청에 있을 때는 제 실수에 대한 책임을 본당 에 지우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본당신부로서 권한 은 누리되 책임은 교우들에게 지우려는 유혹에 빠 지곤 합니다. 책임지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으므로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3. 희망은 있습니다. 순교 성인들이 모두 처음부 터 용감한 신앙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배교했다 가 다시 순교한 분들이 있습니다. 배교했다는 것 은 신앙이 약했다는 건데요. 그런 분들이 훗날 어 떻게 순교할 수 있었을까요? 하느님의 은총과 교 회 공동체의 포용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번 배교한 사람을 교회 안에 다시 받아들이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모두가 죽을 수도 있으니 까요. 목숨 걸고 다시 받아준 덕분에, 하느님의 자 비와 은총 속에서, 신앙이 성장할 수 있었을 겁니 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비록 나약하고 자주 넘어져도, 언젠가는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서로 안아주고 응원하며 신앙을 키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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