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기도의 선물

松竹/김철이 2024. 6. 26. 12:32

기도의 선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오랫동안 교회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신자로서 최소한의 의무라도 지키며 살아온 때보다 냉담했던 기간이 더 깁니다. 제 나름 여러 가지 핑 계가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하느님을 의심하고 원 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기도해 봤자 소용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에 마음이 얼어붙어 갔습니다. 미사도 한 번 두 번 핑계 대며 빠지기 시작하다 주일미사조차 지키지 않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가도 힘든 일이 생기면 다시 십자가 앞에 납작 엎 드렸습니다. 내가 믿음에서 멀어져서 벌을 주시는 걸까, 과연 기도를 들어주시기는 할까 온갖 생각이 떠올랐습니 다. ‘기도해야 한다, 하고 싶지 않다…’를 오가며 강박과 죄의식, 두려움 사이에서 제 마음은 이리저리 방황했습니 다. 기도는 점점 무거운 숙제, 불편한 의무가 되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중 마샤 리네한이라는 심리학자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하 고 심리학자가 된 리네한은 수녀님을 꿈꿀 정도로 신앙이 깊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괴로운 마음으로 방황하던 시기 에 신부님께 조언을 들었습니다. 어떤 것도 요구하지 말 고 침묵으로만 기도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따 라 기도하며 경험한 것을 리네한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 경험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기도할 때 누군가에게 말 을 걸기 시작하면 그것은 당신에게서 떨어져 있는 누군가 와 대화가 된다. 하지만 침묵하면 당신에게서 떨어져 있 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신과 하나로 존재한다. 이 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나 자신이 신의 한가운데 존재하 는 경험이라고.”

 

책을 읽으며 기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 다. ‘그동안 내 기도는 침묵도 대화도 아닌, 오직 요구 사항 으로만 꽉 찬 독백이었구나. 철없는 아이처럼 조르고 투덜 대는 일방적인 소리뿐이었구나.’ 속사포처럼 떠드는 내 음 성만 메아리칠 뿐 하느님 말씀이 들려올 틈은 없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걱정스러운 일을 하느님께 털어놓고 도 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의심과 불만만 가득한 투정은 아닙니다. 가끔 징징대고, 삐지고, 원망할 때가 있 더라도 예전처럼 숨어버리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려 합니다. ‘제 수다가 좀 심해도 하느님, 이해해 주세요! 이 제 좀 성장했으니 당신 말씀 들을 틈도 내어 보겠습니다. 여전히 드릴 말씀이 참 많긴 하지만요.’ 참 길었던 제 믿 음의 사춘기가 이제야 슬슬 끝나가나 봅니다.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 조용한 아침, 초를 켜고 십자가 앞에 머뭅니다. 잠시 가만히 떠오르는 말을 기다립니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조급하게 보채지 않으려 합니다. 기도 하는 시간이 편안합니다. 머릿속을 분주하게 오가는 생 각, 걱정거리들이 등장하면 주님께 말씀드리고 맡깁니다. 이제 기도는 부담스러운 숙제가 아닙니다. 평화를 누릴 기회인 걸, 그 자체로 기쁨인 걸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