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어머니와 어느 교우의 편지 | 조철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주문진 본당 주임 겸 영동가톨릭사목센터 관장)

松竹/김철이 2024. 6. 8. 09:45

어머니와 어느 교우의 편지 

 

                                              조철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주문진 본당 주임 겸 영동가톨릭사목센터 관장)

 

 

대만에서 자취 생활을 하며 공부하던 시절, 나의 몸과 마음이 너무나 엉망이 되어버린 때가 있었 다. 다급했던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바로 어머니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들 신부를 위해 대만 으로 넘어오셨고, 주방도 없는 단칸방에서 나를 위해 손수 식사를 챙겨 주셨다.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지 나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공항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두 통의 편지를 건네주셨다. “신부님, 여기 두 개의 편지가 있어요. 하나는 내가 신부님에게 어머니로서 쓴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신부님을 가장 사랑하는 교우가 쓴 편지예요. 여기서 읽지 마시고 집에 가셔 서 읽으세요.”

 

자취방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라고 적혀 있는 첫 번째 편지 봉투부터 조심스레 열 고 읽어 보았다. ‘아들아, 엄마야! 우리 아들 많이 힘 들지? 엄마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단다. 나는 네가 공부를 끝마치지 않아도, 훌륭한 사제가 아니어 도 전혀 상관없어.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하고 돌아와 도 괜찮아. 엄마는 우리 아들이 그냥 건강하기만 하 면 돼.’그리고 ‘신부님을 가장 사랑하는 어느 교우 가’라고 적혀 있는 또 다른 봉투를 열었다. 그 편지 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아들 신부님, 신부님은 누구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제라고 생각 해요. 어서 빨리 한국에 돌아오셔서 신자들에게 좋은 말씀도 들려주시고 착한 목자로서 살아가기를 늘 기 도드립니다. 신부님 힘내세요!’어머니는 그렇게 힘 들어하는 나를 위해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사 제를 위하는 교우로서, 두 가지 마음을 두 통의 편지 로 남겨 주셨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만 나기 위해 찾아오신다. 그런데 성모님은 ‘나 예수님 의 어머니야’라고 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그냥 들어 가셔도 될 법한데, 밖에서 조용히 예수님을 찾으신 다. 예수님을 찾아온 성모님의 두 가지 마음을 묵상 해 본다. 우선 예수님의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는 ‘아 들이 미쳤다.’라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이 사람 들에게 핍박받고 있음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여인으로서의 마리아는 하 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보다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모님은 아 들 예수가 걱정도 되었지만,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방해가 될까 봐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형제들과 밖에 서서 예수님을 찾고 계셨다.

 

예수님은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으신다는 말씀을 듣 고 군중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들이 내 어머 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 3,34-35). 예 수님에게 있어서 성모님은 당신을 낳아 기르신 어머 니이시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가 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가장 잘 실행한 여인이시다.

 

언젠가 미사 중에 “오늘 미사 중에 제 어머니가 함 께 미사에 참례하고 계십니다.”라고 말하니 신자들 은 누가 본당 신부의 어머니일까 두리번거렸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 해 미사에 오신 여러분이 저의 어머니이십니다.”

 

오늘 미사에도 어머니가 나를 찾아오셨다. 하느님 의 뜻을 실행하며 오늘 미사에 나오신 본당의 모든 어르신들이 예수님의 어머니이시고, 나의 어머니이 시다. 대만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교우가 쓴 편지 의 내용처럼 나에게 맡겨진 어머니들을 예수님의 마 음으로 더욱더 사랑하기로 다짐해 본다. 그리고 나 또한 하느님의 뜻을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 하며 ‘예수님의 형제’라 불릴 수 있는 사제가 되기로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