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꿀샘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09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4. 3. 9. 08:03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 | 20240309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Xi3NmVowrY8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에게 겸손은 가장 어울리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자세를 설명할 때 늘 그분을 두려워하고 겸손한 모습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은 ‘두려워함’과 함께 표현되고 우리는 하느님을 ‘주님’ 곧 ‘주인님’으로 대하는 태도를 지닙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첫 자리요 가장 높은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모두 겸손하지만 자신들끼리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첫 범죄가 있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가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알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진실이지만 자신에게는 이미 선악의 기준이 생겨버린 후 그것이 수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어 같이 죄를 나누지만 그것으로 연결이 아닌 버리고 버리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그런 후 그 자식이었던 카인과 아벨로부터 하느님에게 받는 사랑조차 차별을 느끼고 시샘을 하며 결국 형제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게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그분의 모상 대신에 상대적인 가치로 서로를 대하고 불화를 이어왔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었지만 하느님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당연한 듯 차별의 세상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같은 하느님 앞인데도 바리사이는 꼿꼿한 자세로 세리는 고개를 바닥을 향해서 가슴을 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겸손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전혀 겸손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 ...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앞에서 상대적인 차이가 당연한 것일까요? 하느님이라는 전지전능의 절대자 앞에서는 모두가 겸손하다 말하지만 자신들이 만든 이 차이로 하느님의 은총이나  사랑을 말하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신 사랑의 하느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께서 서 계신 자리를 보면 여전한 우리의 이런 모습은 결코 인정받지 못할 행동이며 어쩌면 죄의 짙은 부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꼿꼿이 서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지만, 그의 행동은 세리와 같은 죄인들 때문에 자랑스러워하는 교만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당연한 듯 느껴지는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있는 세리가 의롭게 된 것은 그가 더 겸손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바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바리사이는 상대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는 스스로 의로움을 걷어찬 것입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0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