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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 부자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 사순 제2주간 목요일, 2024 02 29

松竹/김철이 2024. 2. 29. 07:12

[부자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 사순 제2주간 목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4 02 29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iyx4-IlBLR4

 

 

 

2024년 나해 사순 제2주간 목요일 – 부자가 불행할 수밖에 없는 과학적 이유

부자가 되면 행복할까요? 그렇다면 돈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자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1조 원 가진 부자가 자살한 예도 있었습니다. 15조 원 가졌다가 미국 리먼 브러더스 사건 때 14조 원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자와 거지 라자로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지옥 갔고 라자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부자는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받았고 거지는 나쁜 것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부자는 이 세상에서 행복했고, 거지는 불행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지상에서 천국 갈 것처럼 잘 살다가 한순간에 지옥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예는 없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부터 점점 더 행복해졌던 사람이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은 조금씩 더 불행해졌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부자가 행복할 것이란 착각 때문에 이 지상에서는 고통받으며 살아야 한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하셨던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왜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는지 그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엽총으로 자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부족한 게 없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탄 소설가였고 그 덕분으로 부와 명예, 가족도 있었습니다. 그는 왜 자신이 끊어진 필라멘트와 같다고 말했을까요? 그가 죽어야 했던 이유는 그가 마지막으로 쓴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노인이 아주 커다란 물고기를 잡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의 사투 끝에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배에 실을 수 없어서 옆에 밧줄로 매어 자랑스럽게 항구 마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상어 떼가 나타나 그 물고기를 물어뜯습니다. 노인이 노를 가지고 쫓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생선 머리만 남아있었습니다. 노인은 침대에 푹 쓰러져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는 엄청난 명예를 얻었지만, 말년에 이전과 같은 작품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얻은 기쁨보다 지금 가진 것을 잃을 고통 때문에 더 큰 무언가를 잡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잡히는 게 없었던 것입니다. 
학자들은 얻는 것, 가진 것보다 잃는 것, 그리고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의 고통이 두 배 정도 더 크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20달러씩 주고 50% 확률 게임에서 이기면 50달러를 더 딸 수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도박하지 않습니다. 굳이 공짜로 얻은 20달러를 잃을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50달러를 주었다가 미안하다며 30달러를 빼앗고 배팅을 하려면 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다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돈이 50달러였는데 20달러 공짜로 가지게 된 것보다 30달러 잃은 고통이 더 커서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만회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20달러를 공짜로 받고도 자기 것을 조금이라도 잃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참아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왜 돈을 빌린 사람보다 꾸어준 사람이 더 고통을 당하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왜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거부들은 자기들 재산을 자녀에게 주지 않고 다 기부하겠다고 말할까요? 만약 자녀에게 물려주면 그 돈이 어쨌거나 자기 돈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잃을 두려움에 행복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모든 것에 십일조를 내면 됩니다. 돈과 시간과 재능의 십일조를 내면 어차피 그것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잃는 고통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들로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내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하며 산 사람이 거지 라자로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거지였지만, 잃는 두려움 없이 가진 것을 나누며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부자는 자기가 무엇을 가졌다고 여기니 이 세상에서부터 고통의 굴레에 묶여 살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우리 마음속에 천국과 지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