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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 성당 주임) | 주일복음 특강 | 그리스도인이 친구를 손절해도 될까? | 대림 제2주일 강론

松竹/김철이 2023. 12. 10. 07:17

[주일복음 특강] 그리스도인이 친구를 손절해도 될까? I 대림 제2주일 강론 2023.12.10 I 전삼용 요셉 신부님(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 성당 주임) I 천주교/가톨릭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i73zoYEv8YM

 

 

 

나해 대림 제2주일 – 그리스도인이 친구를 손절해도 될까?

 대림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고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이때 틀림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죄의 용서는 회개의 세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세례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는 세례가 요한의 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를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는 방향을 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선물을 주고 계시는데 받지 않고 반대쪽을 보고 있는 이들의 시선을 그분께로 돌리는 일이 회개입니다. 회개가 없이는 그래서 죄의 용서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옥이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은 이에게 당신 선물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땅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끝까지 자신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 신앙을 이용해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시도입니다. 오히려 손절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참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유튜브 채널 ‘포크포크’에 ‘전 세계 화제가 된 어미 리트리버의 훈육’이란 제목의 동영상이 있습니다. 리트리버 어미는 8주 된 여덟 마리의 새끼들이 젖을 먹겠다고 달려들자 갑자기 짖으며 새끼들을 떼어놓습니다. 새끼들은 처음 보는 어미의 반응에 어리둥절 쥐 죽은 듯이 뒤로 물러납니다. 어미는 차분해진 새끼들을 핥아주며 위로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때가 되면 놓아주어야 하는 ‘단호함’과 그러면서도 새끼를 사랑하는 ‘다정함’이 공존하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훈육법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단호하고 언제 다정해야 할까요?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간다면 단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다정해야 합니다. 대신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단호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도 망치고 자녀도 망칩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에서 갓 대학을 졸업한 앤디는 권위 있는 패션 잡지 ‘런웨이’의 강력하고 까다로운 편집장인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보조 비서로 취직합니다. 미란다의 정식 비서는 에밀리입니다. 그녀는 촌스러운 앤디를 비웃습니다. 앤디는 다소 순진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한 젊은 여성이며 고급 패션 세계에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저널리즘 산업에서 그녀에게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기에 미란다 프리스틀리 밑에서 자기 실력을 증명하려 합니다. 

 처음에 앤디는 까다롭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그리고 불가능해 보이는 미란다의 작업과 기대로 인해 어려움을 겪습니다. 오기가 생긴 앤디는 자신의 역할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더욱 멋지게 옷을 입고 모든 노력을 다한 끝에 미란다의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기 상사인 에밀리를 밟고 오르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애인과도 헤어지고 친구들과 가족도 변한 그녀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결말쯤, 앤디는 미란다가 자기 지위를 지키기 위해 가장 가까운 동료인 나이젤을 희생시키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그러나 미란다는 앤디도 에밀리를 밟고 오르는 모습이 자신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앤디는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란다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모두가 우리처럼 되길 원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애디는 미란다와 ‘런웨이’의 세계를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납니다. 그러자 남자친구와 친구들, 가족들과의 관계가 다시 정상화됩니다. 

 물론 선교하려면 죄인들에게 가까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행복 기준을 바꾸지 않는다면 떠나야 합니다. 낭떠러지로 가는 노새의 끈을 끝까지 잡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타인을 위해 나의 영혼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나의 영혼도 귀합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가 돈이나 명예, 쾌락이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임을 느끼며 참사랑으로 살기를 원할 때 머무르면 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나부터 죄의 본성인 탐욕과 육욕, 그리고 지배욕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를 손절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나도 그 행복을 바라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하와와 손절하지 못해 결국 그의 지옥에 빠졌습니다. 자신도 세속-육신-마귀를 이기는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간 단식하며 광야에서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례자 요한의 초대에 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정함과 단호함을 동시에 지니고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