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착하고 성실한 종 | 배광하 치리아코 신부님(미원 본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3. 11. 20. 15:26

 

 

착하고 성실한 종 

 

                                                       배광하 치리아코 신부님(미원 본당 주임)

 

 

신학생 때 제 동창이 사제 서품 상본의 성구를 “먹고 즐기자” (루카 15,23)로 정하겠다고 하여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술을 찾아 나서야지!” (잠언 23,35)를 서품 성구로 택해야겠다고 하여 더 크게 웃었던 행복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동창들이 이제는 사제 수품 30년을 넘기고 60의 나이, 이순을 넘긴 노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본인의 고귀한 자리를 충실히 지키며 성실히 살아가는 착한 동창들의 모습에 늘 새로움을 배우게 됩니다.

 

초등학교부터 수석을 지켰던 수제였고, 이 나라 최고 명문 대학을 나오고 뒤늦게 사제가 되어 유학 까지 다녀와 평생 노숙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소의 그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성실히 일하고 있는 동창 신부, 독일로 유학을 다녀와 평생 신학교에서 사제 양성에 힘을 쏟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신학 서적을 번역하는 열정의 동창 신부… 등, 저마다 성소의 동기가 다르고 사목의 일터가 다르더라도 구 상 시인의 시처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의 삶을 소중히 살아가는 동창 신부들 모습에서 오늘 저 또한 주님께서 주신 귀 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두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려 노력해 봅니다.

 

착하고 성실히 살아 세상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으로 기억되는 그리운 사람, 사람들에게 잊히 지 않는 그 사람은 하느님께도 잊히지 않는 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의 수많은 천사가 이렇게 찬미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카 2,14)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귀한 평화는 누구나,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분 마 음에 드는 사람들” 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착하고 성실히 살았던 종들,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있었던 종들이 평화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우리네 인생 또한 그러합니다. 다시 복음의 일꾼으 로 충실히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