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필요한 믿음이 다 들어있는 가장 짧고 강력한 기도문]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2023 11 20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bZl3R4sb9Rs
가해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 구원에 필요한 믿음이 다 들어있는 가장 짧고 강력한 기도문
오늘 복음에는 우리가 매 미사 때 하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가 나옵니다. 예리코의 눈먼 이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청합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해도 멈추지 않고 청합니다. 불의한 재판관에서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고 청하는 과부와도 같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단순히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다거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 있는 이들도 하느님이 있는 줄 알고 그 아드님이 예수님임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을 저주합니다. 이스카리옷 유다도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임을 알았습니다. 온갖 기적들을 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드님을 자신이 이겨 먹는 기쁨을 선택하고 지옥에 갔습니다. 이렇듯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단순히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을 믿었지만,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나를 구원하는 믿음이라고 할까요? ‘우와한 비디오’에 ‘쓰레기로 가득 찬 트럭에서 먹고 자는 남자’ 사연이 나왔습니다. 한 아저씨가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일하며 고물을 모아 팔며 생활합니다. 그러나 이틀에 밥 한 끼 먹기 힘들 정도로 벌리는 돈은 없습니다. 차 기름값이나 수리비도 나오지 않습니다. 잠도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자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원룸이 있기는 한데 전기세와 수도세 등을 내지 않아 집은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저씨는 한 시간 정도 차에서 앉아서 눈을 붙이고 하루 종일 일을 합니다. 그러나 남는 것은 없는 삶을 3년째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 이유는 힘들게 번 돈을 원룸에 숨겨놓았는데 도둑이 들어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가격이 오를 것 같은 쓰레기들을 차에 그대로 싣고 다니며 폐지를 주워 하루 몇천 원 정도 벌어 생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작진이 아저씨를 동사무소로 모시고 가서 도울 방법을 찾습니다. 보조금을 받게 하여 집에 다시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게 합니다. 그러고는 차에 있는 오래된 쓰레기들을 처리해줍니다. 기분이 어떠냐는 말에 아저씨는 “속이 후련하죠!”라고 대답합니다.
만약 제작진이 없었다면 아저씨는 언제까지 그 고생을 하며 살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제작진을 믿었습니다. 무엇을 믿었을까요? 제작진이 자신을 그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능력’이 있음을 믿었고 또 제작진이 자신을 이용해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도울 것이라는 ‘자비와 사랑’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움을 청하면서도 자기가 잘해서 도움을 받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저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수많은 핑계를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도와주면 자신이 그렇게 꾸준하게 청하고 말을 잘해서 도움을 얻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저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것들을 얻어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더 자주, 더 많이 청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저는 그들에게 주는 도움을 멈춥니다. 그 도움이 그들에게 이익이 아니라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지은 죄를 주님께서 용서하실 수 없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자신들이 잘해야 에덴동산에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에덴동산에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그러니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고 하는 말은 오로지 그분께만 ‘능력’이 있고 그분은 ‘자비’로운 분이라는 두 믿음의 본질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기도에는 주님의 능력과 자비에 대한 믿음이 들어가야 하기에 모든 기도의 바탕에는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끊임없는 호소가 동시에 들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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