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예수님의 셈법과 세상의 셈법 | 전수홍 안드레아 신부님(토현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3. 9. 22. 09:59

예수님의 셈법과 세상의 셈법

 

                                                                   전수홍 안드레아 신부님(토현성당 주임)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셈법이 세 상의 셈법과는 사뭇 다름을 보여주 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논리에 익 숙한 우리에게 ‘정당한 노동에 대 한 정당한 대가’가 경제 정의의 기 초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포 도원 일꾼과 품삯의 비유에서는, 주 인이 나중에 와서 적게 일한 일꾼과 먼저 와서 종일 일한 일꾼에게 똑 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는데 이는 보편적 경제 정의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은 우리의 공로에 비례해서 베풀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께 봉사하는 시간이나 양을 기준으로 은총을 받거나 구원이 주 어진다면, 우리가 받을 상은 각자에 따라 크게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총은 양으로 잴 수 있거나 차별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더 구나 자비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느 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은 어떤 보상 이나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무상으 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키고 바치 라고 말씀하시기보다 베풀고 용서 하며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린 자녀가 부모를 신뢰하고 부모 로부터 배워서 사람이 되듯이, 우 리도 하느님께 신뢰하고 그분으로 부터 은혜로움을 배워, 그 은혜로 움을 우리 스스로 실천하며 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쳤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뛰어난 사 상가인 러스킨은 오늘 복음의 비유 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이 비유의 정신이야말로 결과를 중요시하고 효 율성을 앞세워 인간을 경쟁으로 내 모는 당시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열쇠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며 대안을 제 시하려 한 네 편의 글을 한 권의 책 으로 엮으면서 오늘 복음의 한 구 절을 따와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인간의 모든 제도와 이념들은 한계가 있 습니다. 물고기가 어항에서 지내다 큰 바다로 나갈 때 더 큰 자유와 행 복감을 누리는 것처럼, 우리도 무 한하신 하느님 품에 안길 수 있다 면 얼마나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