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누군가를 안다고 하는 것 |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3. 8. 5. 09:15

누군가를 안다고 하는 것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우리가 흔히 '안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떠올려 봅시다.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그의 외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인물은 좋은지 어떤 복장을 하고 다니는지 하는 것들입니다. 사실 많은 기관들은 그가 하고 다니는 복장에 관심을 많이 갖기도 합니다. 복장에서 그 사람이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복장을 역으로 이용해서 사람을 속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두번째로는 그가 지닌 정보를 알 수도 있습니다. 즉,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 주변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등등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더 심층적으로 아는 방법이지만 이 역시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스펙은 속일 수 있고 사람들의 일시적인 의견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기꾼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일시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평판을 좋게 만들어서 신뢰를 얻어내고 결국 그들을 기만해서 악용하는 방법입니다. 심지어는 성당 안에서도 이런 일은 흔합니다. 그래서 식별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악인을 두둔하고 의인을 박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인간에 대한 진정한 앎의 영역은 '영혼'에서 기인합니다. 그리고 영을 올바로 식별하는 이들은 상대의 내면에 들어 있는 영의 방향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혼의 내면은 직간접적으로 외적으로 조금씩 드러나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듯이 그가 맺고 있는 열매로 알 수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볼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방사능 측정 장비도 없이 방사능이 얼마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뿐입니다. 영혼의 진실성을 보려면 적어도 깨끗한 영혼의 눈이 필요한 법입니다. 더러운 영혼으로 깨끗한 영혼을 식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맑은 사람은 영혼의 진실성과 성실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적 가치를 갖춘 이를 존경하게 됩니다. 나자렛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볼 시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존경하기는 커녕 오히려 의심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원했던 인물은 하느님의 구원을 선물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의 동네를 빛낼 세속적 성공을 거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 마을에서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기회를 상실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