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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215 오늘의 말씀

松竹/김철이 2022. 12. 15. 08:45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1215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muWuT1QrhNk

 

 

 

천주교 부산교구 장산성당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주님을 기다리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심판’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단 한번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무겁고 중요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할 때 우리에게 이 심판은 ‘죄’를 기준으로 하는 심판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사는 이들은 심판 앞에서 무엇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었기에 세례자 요한이 등장했을 때 그들은 진심을 드러냈습니다.

 

요한의 가치는 현대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강한 사람 앞에서 드러내게 마련입니다. 주님이 ‘위선자’라 부르시고 나무라셨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을 법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 곧 ‘의인’이라 여겼습니다. 의인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들의 가치를 드러내는 가치였던 셈입니다.

 

죄를 기준으로 하느님을 이해했던 이들에게 의인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구별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로 인해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죄가 없다는 것을 ‘착하다’는 뜻으로 착오를 일으키는 것은 지금도 다를바가 없지만 오직 그 죄가 기준이었던 세상이라면 그 차이는 생각보다 더 큰 변화로 이어집니다. 곧 의인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에 가장 큰 사람이라면 하느님이 돌보시는 진짜 ‘의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 기준이 된 사람입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더 이상 큰 인물이 없을 정도로 큰 인물인 이유입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그런 요한의 눈에 예수님은 어땠을까요? 요르단 강에 찾아오셨을 때, 요한은 주님이 자신을 찾아온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른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정말 무죄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같은 물에 몸을 잠그고 세례를 청하시는 주님을 보았고, 그분이 구세주이심을 증언했지만, 그분은 죄가 있는 세상 안에 머무셨고, 그분 곁에는 늘 부족하고 죄 많은 이들이 존재했습니다. 스스로 가난해진 그와 삶의 질곡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다른데도 예수님은 굳이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었습니다. 구세주가 누군지는 알았지만, 그분의 뜻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분의 뒤를 따르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우리는 이 말을 알아듣습니까? 여전히 요한의 가치가 큰 교회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아는 그리스도인인데 말입니다. 정말 성탄이 멀지 않았습니다.

 

 

0:00 오늘의 복음
1:43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