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로마서의 조심해야 할 행동들|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2. 11. 29. 11:56

로마서의 조심해야 할 행동들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흥청대는 술잔치(진탕 먹고 마시기, 포식) orgies, banquetes

악마는 사람을 바로 악으로 이끌어 들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도망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처음에는 좋아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이끌어서 최종적으로 그 사람을 타락시키고 맙니다. 우리가 하는 연회, 잔치는 사실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잔치들 가운데에는 본질적인 친교를 도외시한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임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특히나 로마 시대에는 현대의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온갖 쾌락적 요소가 난무하는 연회가 벌어졌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추잡한 연회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1차로 끝나지 않는 잔치를 이어가면서 자신의 죄스런 갈증을 채워 나갑니다. 

 

만취(취함, 폭음) drunkenness, borracheras

술이라는 것은 '흥겨움'을 불러오는 음식이자 기호식품입니다. 하지만 취함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술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에 그 술은 우리의 영혼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게 됩니다. 특히나 한국의 술 문화는 말 그대로 취하기 위한 목적의 음료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소비합니다. 그래서 더 빨리 취기를 느끼는 것 외에는 달리 술 그 자체가 고유하게 지닌 음식으로서의 가치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취함은 언제나 우리를 올바른 사고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또 영적으로도 죄스러운 쾌락을 찾도록 합니다. 그래서 지나친 취기는 언제나 영적인 타락과 이어져 있습니다.

 

 

음탕(음행)promiscuity, lujuria

우리의 성적 욕구는 정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 사이에서 사랑의 표현으로 그리고 자녀의 출산으로 이어질 때에는 하느님의 축복된 도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을 쾌락 그 자체로만 이용하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심각하게 타락시킵니다. 우리가 성의 고유한 역할과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올바로 이해하지 않으면 곧잘 성은 쾌락의 도구로만 이용되고 또 그 쾌락은 강렬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계의 파괴와 타락을 선물합니다. 

 

방탕(방종)licentiousness, vicios

방탕은 내면에 그릇된 것에 대한 갈증과 추구를 의미합니다. 즉 원래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영혼의 선한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겉꾸민 아름다움에 빠져버린 마음을 총괄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의 가치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내면, 하느님을 찬미하는 즐거움보다 세상의 여러가지 화려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상태를 의미합니다. 나아가 죄스러움을 찬미하는 내면을 가지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적 타락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술을 취기 없이 마셔댈 수 있는지 같은 것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으로 빠지기까지 합니다.

 

다툼(분쟁, 싸움)rivalry, pleitos

무조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다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적대자들이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의 악을 고발하기도 하고 쓴소리를 해서라도 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다툼은 그 어떤 선에 기반하지 않은 서로의 이기심의 충돌을 의미합니다. 특히나 현대 사회는 이러한 '분노'와 '투쟁'을 유발하는 사회입니다. 여러 정치권의 현안들을 두고 서로 사랑해도 부족할 형제들이 공연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쓸데없는 싸움에서 우리를 보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기(시새움)jealousy, envidias

시기라는 것은 참으로 추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이의 영적 선을 두고 나의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어두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은 결국 다른 이의 선의 가치를 파괴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특히 이런 부분에서 자매님들의 죄스런 수다의 자리를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험담하면서 깎아내리고 그것으로 스스로의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스런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쁨을 찾는 이들을 하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의 영적 성과에 진심으로 기뻐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백성에게 합당한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