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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2022 11 11/ 소돔에서 탈출했더라도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묵상 강론 설교 특강 강의

松竹/김철이 2022. 11. 11. 00:00

2022 11 11/ 소돔에서 탈출했더라도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묵상 강론 설교 특강 강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kr1iEFDofpA

 

 

 

2022년 다해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 소돔에서 탈출했더라도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박해윤 작가는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4년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족과 함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시골에 들어왔습니다.

 

박해윤 작가가 박사학위를 마친 2013년에 남편도 갑자기 퇴직을 선택합니다. 당시 남편의 나이는 마흔이었습니다. 박해윤 씨도 교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첫째는 초등학생이었고 둘째는 취학 전이었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무작정 이전 경쟁의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시골 생활이 7년이 지났고 아직은 괜찮다고 합니다.

 

지금은 시애틀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의 오래된 조립식 집에서 삽니다. 서울에서는 방 한 칸도 얻지 못하는 적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집입니다. 먹기 위해 농사도 짓지 않습니다. 처음에 시도했다가 사슴들이 채소 순을 다 뜯어먹어 아예 수렵 채취하며 삽니다. 곳곳에 자라나는 블랙베리와 야생초를 채취하고 통밀을 갈아 빵을 구우며 야생 동물들이 먹지 않는 깻잎이나 방울토마토를 반야생으로 야산에 키워 먹습니다.

 

네 식구가 한 달을 지내는 데 사용되는 돈은 100여만 원이라고 합니다. 물가는 서울과 비슷합니다. 통신비는 약 10만 원입니다. 스마트폰은 없고 통화와 문자만 되는 2G 휴대전화 두 대를 네 식구가 나누어 씁니다. 전기세는 여름에 2만 원 겨울엔 15만 원입니다. 에어컨은 없고 난방, 급수, 취사, 모두 다 전기입니다. 물은 우물물이고 정화조를 이용합니다. 유류비는 15만 원보다 조금 덜 나오는 수준입니다. 자동차 유지비는 월평균 10만 원 정도입니다. 4인 가족의 한 달 식비는 40만 원입니다. 필요한 돈은 시간이 날 때 쓰는 글로 메일을 보내거나 시골 생활과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적은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책의 인쇄비로 충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숲으로 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신없는 경쟁사회에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작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등장인물 중 붉은 여왕이 나옵니다. 붉은 여왕은 항상 앨리스의 손을 잡고 달립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앨리스는 무척 힘이 드는데 여왕과 신하들은 아무리 오래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더 신기한 것은 붉은 여왕과 신하들은 쉬지 않고 달리는데도 언제나 제자리라는 것입니다. 여왕이 그 비밀을 알려줍니다.

“여기에서는 말이야, 같은 자리에 있고 싶으면 있는 힘껏 달려야 하는 거야.”

 

여기서 박해윤 작가는 깨닫게 됩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나를 잃게 만든다는 것을. 모두가 열심히 달리지만 결국 그 욕망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붉은 여왕은 우리가 모두 추구하는 욕망입니다. 돈과 쾌락과 권력일 것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욕망을 줄이는 일이 나에게 불가능한 고행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욕망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욕망을 줄이면 ‘나’가 사라집니다. 내가 사라지면 그제야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며 27년간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혼자 산에 숨어 살았던 크리스토퍼 노마스 나이트(Christopher Thomas Knight)의 사례를 들기도 합니다.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집을 나가 혼자 살기 시작했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훔쳐 그 오랜 시간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가 27년간 혼자 살고 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단 한 순간도 외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박해윤 작가는 이러한 자유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욕망만 남으면 나가 사라지고 그러면 비로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그래서 그녀는 완벽한 자유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완벽한 자유란 곧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도 27년의 여정이 끝난 후, 자신이 누구인지 잊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독은 저의 지각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 점에서 곤란한 일이 생겼죠. 늘어난 지각을 스스로 적용하니, 제 정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관객도 없었고, 저를 보여줄 대상도 없었죠. 저 자신을 정의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전 완벽히 무의미해졌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나가 사라지면 자유롭습니다.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끊을 수 있을까요? 크리스토퍼는 외롭지는 않았지만 “완벽히 무의미해졌다”라고 말합니다. 그냥 모기처럼 산 것입니다. 남의 음식을 훔치며. 자유롭기는 하겠지만 행복하지는 못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 때 노아의 배에 들어가지 못해 수장당한 사람들이나 소돔 땅에 그대로 머물러 유황불에 죽은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그들이 노아의 배, 곧 교회에 들어오지 못한 이유는 세상 욕망과 함께 달렸기 때문입니다. 붉은 여왕에게 잡혀 자기 자리를 지키려다 그렇게 멸망한 것입니다. 소돔 땅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비록 교회 안에 들어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더라도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처럼 세속, 육신, 마귀의 욕망을 버리지 않고 교회에 머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교회는 박해윤 작가처럼 세상 사람들을 붉은 여왕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진정한 자신으로 살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욕망만 버린다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불교의 교리입니다. 우리는 욕망을 버리는 이유가 자기 정체성이 하느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것을 알려줍니다. 롯과 그 가족을 데리고 소돔 땅을 빠져나올 때 그들은 인간이라는 정체성에서 하느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옮겨지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배가 곧 교회를 상징하는데 교회 안에 들어오면 성체를 영하고 하느님과 하나 되었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입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머무는 것이 곧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합니다. 무조건 욕망을 버린다고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욕망이 곧 나인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붉은 여왕이 추구하라고 하는 욕망과 반대입니다. 그것이 사라져야 사랑의 욕망이 자리를 잡습니다. 사랑하면 하느님이 됩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정체성이 말씀과 성체로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구원의 유일한 길이 우리 정체성을 바꿔줄 은총과 진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오늘 복음에서 노아의 방주와 소돔의 두 이야기를 한꺼번에 해 주셨을까요? 하나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이고 하느님 자녀라는 정체성을 부여하여 사랑의 욕망대로 살게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소돔을 탈출하지 못하면, 곧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사랑의 욕망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곧 삼구에서 벗어나 사랑의 욕망으로 나아가야 구원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