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자신을 버리다|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松竹/김철이 2022. 9. 16. 22:27

자신을 버리다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자신을 버린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저 자신을 막 대하고 소홀히 여기고 자신의 모든 욕구를 없애버리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그저 나 자신을 없는 것 취급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올바로 버리려면 그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엄마가 책상을 치우라고 합니다. 그 말이 책상에 있는 모든 기자재를 싹 다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위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먼지를 닦으라는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자신을 버린다는 말도 보다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근원에서 우리를 이끄는 힘은 바로 우리의 근원적인 욕구입니다. 인간은 욕구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욕구가 없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뿐입니다. 배가 고프지도 목이 마르지도 무언가를 이루거나 성취할 생각도 없기 때문에 그저 그 자리에 머무르면서 자신의 생이 다하기를 기다릴 뿐이지요.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 욕구의 방향이 문제입니다.

 

자신을 버린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우리의 이 욕구가 누구 때문에 형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에서 올바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의 욕구가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라면 우리는 자신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되고, 반면 우리의 욕구가 내가 아닌 존재에서 얻어진 것이라면 나는 비로소 나를 버린 사람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 2,20)

 

성모님도 당신을 버리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고백을 통해 성모님은 당신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성령으로 잉태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당신을 버리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기도 속에 자신을 아버지 앞에 내어 바치셨고 그렇게 당신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성령으로 다가오시는 거룩한 위로부터의 뜻에 직면하여 우리를 버려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되고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분쟁과 다툼'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누구든 그 길을 가려고 하면 서로 길을 먼저 내어주지만 반대로 세상이 추구하는 길로 가려고 하면 가려는 사람이 많아서 서로 부딪힐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당에 봉사를 자진하겠다고 싸우는 사람은 없지만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많은 법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버리고 날마자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죽어도 살고 살아서도 영원한 생명을 앞당겨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거부를 당해도 하느님의 사랑을 쥐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행복하리니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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