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호 빈첸시오 신부님|20220322 오늘의 말씀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dnbPd1B3fPg
천주교 부산교구 괴정성당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오늘의 말씀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잘못과 죄는 우리 곁에 붙어 있는 불쾌한 것들이지만 결코 한 번도 쉽게 떨어지는 법이 없는 우리의 분명한 모습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라는 단어만 들으면 일단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베드로의 질문은 꽤 기특한 질문입니다. 우선 그는 용서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대상이 형제라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는 그 용서에 대해 어느 정도가 합당한지 묻습니다. 그것도 완전한 숫자 일곱 번을 말하면서 말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예수님은 한 말씀으로 그 한계를 없애버리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더 설명할 이유 없이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너무 확고해서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흔일곱 번까지라도’라는 말씀은 그 용서의 한계를 하느님께로 끌어 올린 기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 용서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마약 우리가 지금까지 받은 용서를 숫자로 헤아려 본다면 우리는 그 숫자를 셀 수 있을까요? 이미 일흔일곱을 넘어버린 사람은 나이의 많은 순서대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수도 없는 잘못을 했고, 또 의도적인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리고 무수한 경우 죄를 지은 대상에게 제대로 된 용서를 청하지도 못한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고해소에서 만나는 하느님은 단 한번도 그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늘 사죄경만 해야 하는 처지가 안타까울 정도로 힘 없는 종은 사죄를 위한 자격과 능력만을 받은 채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그렇다고 그분의 사랑이 힘 없는 기계적인 것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에라도 책임을 물으시면 우리는 두려움을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우리가 받은 용서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0:00 오늘의 복음
2:35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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