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2 18/ 결국 죽는 사람은 미지근한 사람이다/ 연중 제6주간 금요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클릭):https://www.youtube.com/watch?v=ZA_p77rP0rI
2022년 다해 연중 제6주간 금요일 – 결국 죽는 사람은 미지근한 사람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마르 8,35)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베드로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죽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생존’입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죽으려 하지 않으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꾸짖으신 것입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면 사탄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말은 이웃의 생존을 위해 내 생존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 뜻입니다.
살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기 때문에 죽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제 목숨을 내어놓는 사람은 삽니다.
록펠러는 인생의 절반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서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자신의 돈으로 이름 모를 여자아이의 수술비를 대줌으로써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몸도 건강해져서 90세 넘게 살았습니다.
죽으려 한다는 말은 나의 생존을 위해 모으는 것을 다른 이의 생존을 위해 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록펠러에게 수술비를 지원받은 여자아이가 쓴 장문의 감사 편지가 그의 인생과 건강을 되찾아준 것입니다. 사랑하면 반드시 받게 되어있습니다. 사랑은 나의 죽음입니다. 그러니 사랑하기 위해 죽으면 오히려 살게 되는 것입니다.
1987년 ‘로버트 네렘’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표준 토끼 모델’이라는 간단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환경에서 토끼들에게 고지방 식단의 사료를 먹이고 마지막 단계에서 토끼들의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박동수, 혈압 등을 측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콜레스테롤 수치는 모두 같이 높았습니다.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별 기대 없이 토끼들의 미세혈관을 관찰하였습니다.
네렘 박사는 토끼들의 동맥 안쪽에 비슷한 지방 성분이 쌓여있으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토끼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한 무리의 토끼들은 다른 토끼들보다 혈관에 쌓인 지방 성분이 60%나 적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라며 원인을 찾았지만 이 결과를 설명할 아무런 차이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네렘 박사와 팀원들은 단서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방이 덜 쌓인 토끼들은 최근 그의 연구에 합류한 ‘무리나 레베스끄’가 돌본 토끼들임이 밝혀졌습니다. 레베스끄가 토끼들에게 사료를 줄 때 다른 연구원들이 주는 것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토끼들에게 사료를 주며 말도 걸었고 종종 껴안고 쓰다듬었으며 토끼들을 귀여워해 줬습니다. 사랑을 준 것입니다.
네렘 박사는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애정이 어떻게 물질적인 육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것은 과학자로서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실험을 반복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실험 조건을 더 엄격하게 통제하였습니다. 그리고 레베스끄가 돌보는 토끼들과 그냥 사료만 준 토끼들의 동맥을 다시 조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네렘 박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의 힘이 있다는 것을. 그는 이 결과를 세계적 권위의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등재하였습니다.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 토끼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안아주고 애정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식단에 따른 많은 부작용이 사라졌습니다. 사람과 토끼가 맺은 관계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물질은 물질이고 애정은 애정이라고 여겼던 수많은 의사와 과학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사랑은 분명 있고 이것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받아야 하는 실체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내가 줄 때 받습니다. 아무리 사랑이 많은 레베스끄라고 하더라도 징그러운 파충류를 두고 실험했다면 그만한 사랑을 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인데 내가 먼저 사랑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이웃을 모기처럼 빨아먹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부터 죽어가고 죽어서는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죽는 법을 배워 영원히 사는 천국으로 향해야 합니다. 구원의 길은 사랑 때문에 나 자신이 죽어 사랑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랑으로 죽기를 거부할까요? 왜 스스로 죄 많은 사람이 되어 죽는 길로 가는 것일까요? 왜 남을 위해 나의 것을 내어주면 바보 소리 듣는 세상이 되어버렸을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 8,38)
우리는 사랑으로 죽어야만 살 수 있다는 진리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삶으로 실천하고 전해야 합니다. 두 방향밖에 없습니다. 살려고 하든, 죽으려고 하든.
이 단순한 진리도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살려고 하면 결국 죽는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 보통 그런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인생을 살기 때문에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방향을 잡으려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가만있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강물 위에 가만히 있으면 바다로 흘러가 영원한 미아가 됩니다.
현재 유튜브판 ‘골목 식당’을 운영하는 ‘장사의 신’이란 채널이 있습니다. 이 일을 하는 주인공은 은현창 대표입니다.
그는 가난한 반지하 단칸방에서 여러 식구와 함께 살았습니다. 비가 오면 언제 물이 집으로 흘러들어올지 몰라 항상 망을 보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면 항상 돈이 없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죽기 살기로 일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자장면 배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군대 제대하고는 곱창집을 하였습니다. 당시 곱창을 배달하는 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곱창을 배달하겠다는 아이디어로 대박이 났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한 가게에서 버는 돈은 한정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프랜차이즈를 하자니 곱창을 표준화시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프랜차이즈가 쉬운 치킨집에 도전합니다. 처음엔 손님이 너무 없었습니다. 혼자 튀기고 전화 받고 배달하며 단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점점 입소문이 나고 많은 수의 프랜차이즈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단 한 가게도 망하지 않고 다 잘 팔리는 치킨 프랜차이즈를 만든 것입니다.
대신 그가 얻은 것은 병이었습니다. 비만 오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온종일 누워만 있어야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이때 프랜차이즈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팔 생각이 없었지만, 몸이 망가져서 어쩔 수 없이 팔았습니다. 그의 통장에 찍힌 액수는 ‘200억’이었습니다. 이 숫자를 보는 순간 그가 기뻤을까요?
“이게 다야?”
대부분 성공만 바라며 뛰어온 사람들이 느끼는 허탈감입니다. 모래성을 공들여 평생 쌓은 것입니다. 그는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종원’ 씨가 하던 골목식당과 같은 프로를 자신의 장사 경험으로 무료로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돈은 자신에게 더는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장사가 안되는 집들의 코치도 해 주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의 가게에서는 수백만 원어치를 팔아줍니다. 그는 웃으며 말합니다.
“유튜브 수입, 내가 이래서 맨날 적자야!”
장사꾼이 적자를 낼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내가 살기 위해서 끝까지 가보았기 때문에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안 사람입니다.
돈을 벌었다가, ‘아, 이건 아니지!’라고 하며 다시 남을 위해 살려고 했다가, ‘아, 이러면 우리가 굶어 죽겠다!’라고 하며 왔다 갔다 한다면 나만을 위한 삶이 나를 죽인다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합니다. 어떻게 죽던지 죽겠다는 마음으로 돈을 벌든지 이웃을 위해 살든지 해야합니다. 그래야 다시 뒤로 돌아가는 일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며 살려고 했다가 평생 그것이 자신을 죽이는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방향을 확실히 정합시다.
나 자신을 위해 살려고 죽도록 일하던지, 아니면 사랑을 위해 죽으려고 살던지.
결국, 죽는 사람은 방향을 잘못 잡은 사람이 아니라 미지근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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